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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59주년] "57년전 헤어진 오빠, 오빠…"

순천 출신 한국전쟁 참전 故 송원종씨 유해 2007년 찾아
여동생 송옥자 할머니 "이런 비극 다신 없어야" 눈물

6ㆍ25 한국전쟁이 올해로 59주년을 맞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참혹한 역사의 기록으로 존재하는 그날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전쟁의 아픔을 마음에 품고 사는 이들이 많다.

광주 동구 동명동에 사는 송옥자(76) 할머니도 그 중 한사람이다. 송 할머니는 지난 1950년 한국전쟁 중에 오빠와 헤어진 뒤 일평생 오빠를 찾아 헤매다 57년만인 지난 지난 2007년 국방부의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뼈 조각으로나마 오빠를 만날 수 있었다.

송 할머니보다 두살 위였던 故 송원종(31년생ㆍ학도병)씨는 당시 18살로 순천중 5학년에 재학중일때 학도병에 지원, 경남 하동지역 전투에서 북한군 6사단과 교전하다 전사했다.

당시 순천은 청년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만연해 6ㆍ25 전쟁 발발 2년 전 일어난 여순 사건 때 어머니를 잃은 것에 애통해 하던 고인도 가족 몰래 집을 나서 전쟁터로 향한 것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의 고인은 고된 훈련을 참아내기 힘들었던 나머지 어느 날 새벽 도둑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군에 한번 지원했다가 돌아오면 가족들까지 몰살시킨다'는 소문에 겁 먹은 고인의 아버지가 등을 떠민 바람에 다시금 전장으로 발길을 향해야 했다.

이후 고향에 되돌아 온 고인의 친구를 통해 고인의 위치를 전해들은 아버지는 직접 고인을 찾아 떠났지만 당시 비행기 폭격이 즐비했던 하동은 3일 만에 고인의 아버지를 체념하게 만들었다.

송 할머니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때 부산으로 피난 간 사람들이 많았는데 하동에서 학도병들이 총알받이 하면서 인민군을 막아준 통에 피난민들이 많이 살았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고인의 아버지는 아들을 전쟁터로 밀어냈다는 죄책감에 고인이 국가 유공자로 지정돼 매월 지급되던 보상금마저 거절하고 평생 고인을 그리워하다 결국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났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수 천개의 시신 더미 속에서 '나 좀 찾아 달라' 말하던 고인이 나온 꿈을 꾼 송 할머니의 막내 동생 송행종(63)씨는 2007년 현충일 특집방송에 출연, DNA가 일치하는 한 구의 유해를 찾게 됐다.

송 할머니는 "그 날 방송 출연자만 3000명이라 설마했는데 유해를 찾은 단 한 유족이 우리였다는 사실에 로또복권이라도 당첨된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반세기동안의 깊은 잠을 깨고 가족 품으로 돌아 온 고인의 유해는 지난 2007년 11월9일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 안치됐으며 송 할머니와 유족들은 현충일을 고인의 기일로 정하고 매년 묘역을 찾아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송 할머니는 "다시는 비운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우리의 고통을 잊지 말아달라"며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한 유해들도 하루 빨리 가족과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남일보 기수희 기자 hiyaa1020@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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