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 정부 권한 침해 우려로 강한 제재는 불가능할 듯
유럽연합(EU) 정상들이 19일(현지시간) 범유럽 금융감독기구를 창설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금융 개혁 방안에 원칙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개혁안의 내용이 미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 금융개혁안에도 못 미쳐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 모인 유럽 각국 지도자들은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금융규제 개혁이 필요하다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각국에 새로운 감독 체계를 소개하는 세 개의 범유럽 규제기관을 설치하고 '유럽시스템리스크위원회(ESRB)'라 불리는 모니터 기관을 만들어 금융권 안정화를 돕기로 했다.
이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권한을 집중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공황 이후 최대 금융 개혁안을 발표한 지 이틀만의 일로 전세계가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금융권을 수술대 위에 올렸음을 의미한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9개월 전까지만 해도 권력을 결집한 범유럽 감독기구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면 아무도 믿지 않으려 들었을 것”이라며 금융감독기구 창설이 탄력을 받아 빠른 속도로 추진됐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EU가 마련한 개혁안이 금융위기 재발을 방지하는 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럽정책 연구센터(CEPS)의 다니엘 그로스 이사는 “일반적으로 기대하던 개혁책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같은 기관의 니콜라스 베론 이코노미스트도 “많은 사람들이 ‘과연 충분할까’라는 의문을 품게 될 것”이라며 “유럽의 금융개혁은 미국판 보다도 미흡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정상들 사이에 범유럽 금융감독 기구가 유럽 각국 정부의 규제권한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아 강력한 개혁안은 쉽지 않았다. 합의문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각국 회원국 정부의 재정의무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명확히 했다.
이는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강제 집행과 같은 권한이 빠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담 이후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영국 납세자들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새로 설립될 감독기구의 의장을 누가 맡을지에 대해서도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장 클로드 트리셰 현 ECB 총재가 의장을 맡길 원하지만 유로존 멤버가 아닌 영국은 ECB 총재가 이 자리를 맡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한편, 이날 EU 27개국 회원국 정상들은 주제 마누엘 바로스 EU 집행위원장을 재임시킨다는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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