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찬란한 유산'이라는 드라마가 안방 극장을 강타하고 있다. 재벌집 할머니가 손자가 아닌 생판 모르는 젊은 여자에게 유산을 넘겨주겠다는 내용으로 시청률 30%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몰이 하고 있는 것.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이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다. 혈육이라고 망나니 손자에게 유산을 무조건 상속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내용 때문.
사실 이 드라마는 현실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상황전개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된 '자식병'을 다시한번 돌아보게끔 하는 모멘텀을 제시해 관심이 집중된다.
대한민국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는 심각한 열병에 걸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자식병'은 돈과 연결되면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 고위 관료가 자식의 취직을 청탁하다가 불명예 하차하는 소식도 들렸다. 자식이 사소한 시비끝에 맞았다고 '주먹'을 대동해서 보복한 재벌 총수도 있었다. 자식이 다니는 학교에 부당하게 지원금을 준 교육계 관료도 철퇴를 맞았다. 자식의 사업자금을 대기위해 편입생에게 돈을 받는 모 대학 전 총장 부인의 경우도 혀를 끌끌 차게 하고 있다. 증여세를 내지않고 자식에게 주식을 증여하는 일도 허다하다. 고가의 학원비를 대기위해 검은 돈의 유혹에 빠져든 부모들이 한둘이 아니다.
'자식병'이 확산되면서 대한민국은 각종 후유증으로 신음하고 있다.
교육열병에 따른 사교육비 부담과 강남부동산 가격 폭등, 청탁, 부정부패, 기러기아빠로 인한 가정파괴 등의 원천이 따져보면 '자식병'에서 기인한다. 집한채라도 자식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게 대한민국 부모들의 한결같은 심정이다.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기 보다는 자식이 노후의 대책인 양 착각하며 자식들을 떠받드는데 온 힘을 다한다. 보다 많은 것을 자식에게 넘겨주고, 남겨주려다보니 자식들의 가치관도 부모로부터 받는게 당연하다고 굳어진다. 오로지 자식이 잘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다른 가치들은 그 의미를 모두 상실하게 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식 문제에서 도덕성 흠집의 단초가 됐다. 돈에 욕심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던 그도 결국 자식 문제에서 스스로의 가치관을 내던져버린 꼴이 된 것이다.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냈는데 무슨 욕심이 있겠냐고 뇌까리지만 노 전 대통령도 자식병에서 헤어나질 못한 셈이다. 대통령가(家)라는 영광을 후손에게 남겨준건데 거기에 더 무슨 안전장치가 필요했을까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에서 부정부패는 자식에게 뭔가를 남겨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다"고 말한 법조계의 한 중진의 말은 언제 되새겨봐도 새록새록하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자신도 '자식병'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서 그랬다'는 해명 아닌 변명은 우리 사회에선 일종의 면죄부처럼 쓰여진다.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일찍이 자식을 떠나보낸 일부 지도층 인사의 경우 '자식병'이 없어지면서 사회 환원에 앞장서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데 힘쓰는 경우를 비교해보면 극명한 대조가 된다.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 자식에게 남겨줄 '찬란한 유산'은 과연 어떤 것일지. 각자마다 다를 것이다. 집 한채 마련해주려는 생각도 찬란한 유산이 될 수 있다. 어떤 이는 삶의 지혜나 가치관을, 어떤 이는 고기를 낚는 방법을, 어떤 이는 가문의 영광을 남겨주는게 나름의 찬란한 유산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자식에게 돈이라는 유산을 남겨주는 쏠림현상에서 벗어나 각자마다의 그 무언가를 유산으로 남겨주려 할때 찬란한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 믿는다.
김영무 부국장 겸 산업부장 ymoo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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