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갈림길에 선 일본 정부가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일본 정부가 9일 발표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대해 이 같이 평가했다.
그는 현재 일본의 경제적 상황을 '생사의 갈림길'로 판단하고, 늦게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한 점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일본의 적극적인 행보가 아시아 지역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은 총 25조엔의 자금을 경기 부양에 쏟아 부을 움직임이다. 일본은 드디어 경기 침체라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이다. 아직 충분히 심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고무적인 변화임이 분명하다.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은 대규모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로 소극적인 움직임으로 일관하는 유럽 국가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소시에떼 제너럴(SG)의 글렌 맥과이어와 같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2위의 경제 강국인 일본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선 것으로 판단한다. 일본은 선진국 가운데 이번 금융위기로 가장 커다란 타격을 입은 국가다.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아소 다로 총리가 앞서 제시했던 두 가지 부양안은 시장과 내수를 살리는 데 실패했다. 이번 부양책 역시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맥쿼리의 일본 담당 이코노미스트인 리처드 제람은 아소 다로 정권이 내놓은 경기부양안이 충분하다고 보지 않지만 출발은 긍정적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출발'이라는 데 있다. 아소 다로가 내놓은 경기부양안은 자그마치 GDP의 3%에 해당한다. 앞서 추진했던 두 가지 부양안까지 합치면 일본은 GDP의 5%에 해당하는 자금을 투입하는 셈이다. 이는 미국과도 맞먹는 규모다.
또 이전의 부양안처럼 3년에 걸쳐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시한이 1년으로 정해졌다. 이번 경기부양책이 제대로 실행되기만 하면 내수 경기가 안정되는 동시에 고용 악화도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에서는 기업 겨기전망이 사상 최악으로 곤두박질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고용 한파가 더 거세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국채 수익률은 11월 이후 급상승하고 있다. 가뜩이나 취약한 국가 재정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 많은 재정 지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4월 말부터 2000여개의 일본 기업이 2008 회계연도의 실적과 함께 2009 회계연도의 목표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전 세계적인 불경기와 함께 엔화 강세가 맞물려 있어 실적과 전망 모두 우울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앞으로 추가로 투입돼야 할 재정지출 규모인데, 일본은행(BOJ)이 걸려든 유동성의 함정으로 인해 상당 규모의 자금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람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BOJ가 0.1% 수준인 기준금리를 앞으로 -4%에서 -5% 수준까지 떨어뜨려야 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유럽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경기 회복과 함께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주 ECB는 기준금리를 1.50%에서 1.25%로 인하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ECB의 행보가 매파적인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는 버티기에서 한 발 물러선 모습이다. 일본이 4조 엔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것이 그 근거다.
미국과 일본, 그밖에 아시아 신흥국은 경기 부양책을 펴는 데 보다 유리한 입장이다. 유럽 상당수의 국가는 재정적자 규모가 GDP의 3%를 넘지 말아야 하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세계 경제가 더 악화될 경우 유럽도 재정 완화에 나서는 것 외에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최근 글로벌 증시는 강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주식시장을 바라보자면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되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 같은 낙관을 유지하려면 각 국 정부는 더 공격적인 행보를 취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국가가 얼마나 많은 자금을 쏟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현 시점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일본 정부가 마침내 이번 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했고, 이는 아시아 지역에 호재라는 사실이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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