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녹색성장과 그린에너지’란 말이 대안산업으로 자주 거론됩니다. 알고 보면 어휘가 다소 생소할 뿐 실은 주위에 있는 물과 흙, 그리고 바람과 태양이 원자재인 셈입니다. 태양전지와 조력발전과 풍력발전 같은 것, 그리고 퇴비로 쓰는 음식물쓰레기와 사람과 가축의 분뇨들도 포함되겠지요.
이 분야에 속칭 ‘똥 박사’로 불리는 결코 지저분하지 않은 토종과학자 두 분이 있는데, 서울대 인류학과 전경수(60) 교수와 KIST 수질환경연구센터 박완철(54) 박사입니다. 전 교수는 2001년도에 <똥이 자원이다>란 야심 찬 책을 펴냈으나 평범한 제목 때문인지 서점에서 별 반응이 없자, 이듬해 후속편에서 제목을 <똥도 자원이라니까>로 바꿔서 목적을 달성할 정도로 똥에 애착(?)이 강한 분입니다. 물론 기발한 제목 덕에 책은 더 팔렸었죠.
그는 똥이 흙과 섞이면 자원이 되지만, 지금 수세식 화장실처럼 물과 섞으면 독소를 생산하여 환경을 망친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생태인류학을 전공한 인류학 박사가 하필이면 똥과 환경을 필생의 화두로 삼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똥 박사’가 맞긴 맞지요.
박완철 교수는 오·폐수 정화기술의 국내 1인자로 가축 분뇨와 폐수처리가 주 연구분야입니다. 그의 기술을 이전받아 크게 성공한 벤처기업도 있습니다. 얼마나 분뇨를 사랑했으면 연구용으로 집 냉장고에 그걸 보관했다가 부부가 다툰 이력이 있을 정도입니다. 두 사람이 다 우리국토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점에서 단순한 ‘똥 박사’가 아닌 ‘위대한 똥 박사’라고 해야겠죠.
그러나 실제로 하루에 다양한 똥을 가장 많이 만지기로는 대장암분야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 의대 박재갑(62) 교수입니다. 그의 일상은 장갑을 끼고 환자들의 대장을 더듬는 일로써, 30여년 이상 무려 5000여명이 넘는 대장암수술 기록을 가진 세계적인 기록보유자입니다.
그는 아침에 똥만 제대로 잘 누면 만사형통이라고 틈만 나면 ‘건강한 똥’ 예찬론을 펼치며 배설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쾌락을 느끼는 순간이고, 먹는 것만큼이나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합니다. 사람의 성격도 뒤끝이 없는 게 좋듯이, 뒤끝 없이 한 덩어리로 똑 떨어지는 ‘바나나 모양 황금변’ 예찬론자입니다. 하지만 콧구멍을 통해 배설되는 담배연기에 대해서만은 단호하게 반대하는 국내 제일의 금연운동가로 애연가들과 KT&G(담배인삼공사)의 제1공적으로 그 악명(?)이 높습니다.
위 세 분의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강연이나 저술에서 ‘똥’이라는 단어를 원어(?)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아니 ‘똥’만 고집한다는 편이 맞습니다. 오히려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제발 똥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며 불편해 하지만, 그들은 상관없이 오늘도 즐겁게 똥을 밥 먹듯이 얘기하며 본분을 다합니다. 음식은 아무리 많이 먹더라도 결국은 똥으로 나오고, 나이 또한 아무리 곱게 먹더라도 마침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마지막 소재에 관심을 갖고 머리를 싸맨 이가 위의 ‘변(便) 박사’ 세 명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똥의 종착지에 ‘해우소(解憂所)’라는 단어를 처음 붙여준 이는 양산 통도사에 머물렀던 경봉 선사로 당시 나이 예순 무렵이었습니다. 다들 변소(便所)라는 단어 하나만 익숙하여 들락거리던 그곳에, 어느 날 선사가 소변보는 곳에다 ‘급하면 쉬어가는 곳’이란 뜻으로 시자에게 써준 글자가 ‘휴급소(休急所)’였습니다.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선 ‘쉴 휴(休)자’에다 마음 심(心)자 위에 뚜껑을 덮은 모양의 답답한 '급할 급(急)자'의 조합-글자대로 ‘휴식이 급히 필요한 곳’입니다. 같은 날 큰일을 보는 곳에는 '근심을 내려놓는 곳'이란 뜻으로 '해우소(解憂所)'란 단어까지 함께 주었다고 합니다. '근심할 우(憂)자'를 가만히 보면, ‘마음 心’자가 아래위로 꽉 막혀 정말 숨 막혀 보이지 않습니까? 선사의 눈에는 그 글자가 뱃속의 대장에 꽉 들어찬 변으로 보였겠지요. 그걸 해결하지 않고서는 먼 길을 걸어가도 끝내 근심스러웠음을 누구나 한번은 경험했을 것입니다.
경봉 선사는 성경도 십여 차례 읽었을 정도로 종교와 사람에 대해 경계가 없었던 분으로, 특이하게 입적 후 사리가 한 개도 나오지 않아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리가 나오든지 말든지 그건 문제가 아닌데... 조용필이 대마초사건으로 방황할 때 찾아갔던 스님으로, 처음 보는 그에게 “너는 뭐하는 놈인가?”라고 일갈하여 가수라는 대답을 듣곤, “네가 바로 꾀꼬리구나 무슨 뜻인지 알겠나?”고 반문하여 국민가수를 당황하게 한 분입니다.
조용필에게 “그걸 한번 찾아보라”고 아리송한 숙제를 내자, 그날 터덜터덜 산길을 내려가던 조용필이 흥얼거리며 만든 노래가 바로 <못찾겠다 꾀꼬리>란 히트곡입니다. 불멸의 조어 ‘ 해우소(解憂所)’를 만든 경봉선사가 속세를 떠날 채비하던 1982년 여름. 20년을 봉양한 상좌가 곁에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가시면 몹시 보고 싶을 겁니다. 어찌 하면 될까요?”
"내가 보고프면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거라.”
야반삼경은 시간이고 대문빗장은 공간이 됩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영혼도 대화를 할 수 있는데 그까짓 시공(時空)쯤은 아무런 걸림이 아니 될 터. 지금은 삼경에 보름달이 훤하게 떠 있어도 없어서 못 만지는 빗장입니다. 해서 사람들은 그 빗장이 그리워서 오히려 마음속에다 빗장들을 채워놓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요.
북한 군부가 개성공단의 ‘출입문 빗장’을 잠근 지 하루만에 다시 열 때까지, 공단의 사업자들과 가족들은 24시간 동안 얼마나 맘 졸였을까요. 이 볼모와 같은 형식의 대규모 사업장을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끌고 가야할지 참 걱정스러운 분단의 처지입니다.
여러분도 빗장을 풀고 혹여나 주위에 불러 쓸 만한 인재나 물건들이 있는지 이 기회에 한번 찬찬히 잘 살펴보시죠. 똥도 자원이라니까...
시사 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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