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석탄공사 사장이 ‘막장’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겠습니까.
막말과 몸싸움을 장기로 하는 정치와 시청률에 볼모잡힌 불륜드라마에 ‘막장’이라는 접두어대신 붙일만한 마땅한 단어가 별로 없다는 게 서글픈 일입니다.
시위 현장이나 여야대치 현장이나 TV화면 곳곳에 막말과 악다구니가 난무하고, 별 신나는 뉴스가 없는 요즈음. 시청률이 절정에 이르고, 국민통합이 최고조였던 2002년 6월 뜨거웠던 그 시대로 잠깐 돌아가 봅시다.
당시 최고의 주연배우였던 히딩크는 걸출한 리더십을 가진 이방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탁월한 리더의 자질을 넘어서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이며, 자신만의 비유법으로 시인과 같은 언어를 구사했던 인물입니다. 변방의 한국축구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었던 그가 떠난 후, 불과 6년여 만에 제자리로 컴백한 FIFA랭킹을 보면 한 인간의 리더십이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히딩크의 인간미를 이해하기 위해 이름을 영어로 풀어보니, ‘He think’ =‘그는 생각한다.’ 가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참으로 그럴듯한 이름 아닌가요. 실제로 그는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마다 깊이 생각하며 의미 있는 말을 던졌습니다.
그를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하기 위해 유럽으로 날아가 설득했던 축구협회 임원에게, 히딩크는 “만약 연습중인 선수들을 보고, 나무에 올라가라고 한다면 그들이 나무에 올라가겠는가?”라고 질문합니다.
“일부 선수들은 불평을 하겠지만, 결국에는 전부 다 올라갈 것이다.”라는 확답을 듣고, 100만 달러가 넘는 연봉 계약은 이런 선(禪)문답 하나로 OK 사인이 났습니다. 그리곤, 차라리 나무에 올라가는 것이 더 편할 것만 같던 고강도 체력강화훈련에 선수들은 1년 이상 시달렸습니다. 올라가기를 주저하고 불평한 멤버들은 국가대표명단에서 떨어져 나갔지요. 형편없는 원정경기 성적으로 '오대영'(5;0)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어서 국민적 비난을 받을 때도 의연했습니다.
“오늘부터 하루 1%씩 전력을 상승시키면 50일 후가 되면 50%가 상승된다.”고 감히 한전(韓電)도 상상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전력예측을 개막 50일 전에 눈도 깜짝하지 않고 당당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한 가지는 약속하고 장담했지요.
“우리는 6월이 오면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정말 6월이 되자 그가 말 한대로 세계가 놀라고 말았습니다.
폴란드에게 첫 승을 따낸 히딩크의 소감.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란 말을 기억할겁니다.
6월17일, 강적 이탈리아와 16강전을 앞두고는, “역사를 만들어 보자!”(Let's make a history) 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한국팀은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었던 1986년 월드컵의 기적을 상기하며 ‘Again 1986’이란 슬로건을 걸고,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고 말았습니다.
4강으로 가는 스페인전을 하루 앞둔 날, 히딩크는 승리하겠다는 말 대신 “스페인은 내 마음속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그처럼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도록 했을까요?
그날 운명의 페널티킥 승부가 끝나자마자, 승리에 들뜬 선수들의 열광적인 세리머니를 뒤로하고 홀로 그라운드로 걸어 나간 승부사. 거기엔 마지막 페널티 킥을 실축한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 ‘22번 호아킨’이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없이 다가가서 머리를 감싸 안고 등을 두드려줍니다. 당시 호아킨은, 2년 전 스페인에서 감독을 하던 히딩크의 눈에 띄어 1부 리그로 스카우트 되었던 선수였습니다.
비유하자면 박지성처럼 히딩크에 의해 발탁되고 급성장한 유망주로, 그날 경기에서도 우리 골문을 두 차례나 위협한 슈팅을 날렸던 새끼호랑이였습니다. 호아킨의 페널티킥 실축은 스승 히딩크가 노려보는 코리아팀 골문으로 슈팅을 날려야만 하는 부담감 때문이었습니다.
히딩크는 담담하게 슛을 하기 힘들었던 21살의 청년이 조국에 돌아가서 들어야 할 실축의 비난과 겪어내야 할 고통의 시간을 생각하며 먼저 가슴 아파 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냉혹한 승부사 이전에 인간 히딩크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지 않습니까? 그 스페인전 승리의 소감이 “오늘 밤 와인이나 샴페인을 한잔 하겠다”였습니다.
드디어 4강전에서 독일에 패배한 날 허탈해 있는 4800만 한국인들에게 던진 말은, “패배는 아쉽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를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 철학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을 통해서 비로소 히딩크 언어의 진면목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날, “이제 3,4위전을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며 광란했던 국민들이 현실에 눈을 뜨도록 마음의 준비를 시켰습니다. 이 땅에, 축구기술보다 더 소중한 드라마를 남겼던 히딩크... 이후 약체인 호주 국가대표팀과 러시아 국가대표팀을 맡아서 다시 ‘히딩크 축구’의 마법을 연출하여 그의 건재를 입증했습니다. 마침내 올해는 러시아 명문프로팀 첼시의 감독을 겸하며 유럽의 챔피언을 꿈꾸고 있지요.
그는 막장에 몰린 순간에도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허풍을 떤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최선을 다해 하나하나 쟁취해 나갔던 것입니다.
새삼, 웬 흘러간 월드컵타령이냐고요? 축구나 정치가 몸싸움으로 승패가 나는 점은 마찬가지죠. 국민들이 보기엔 양쪽 다 너무나 뻔한 꼼수요, 꼴불견인데 서로 승리했다고 자축하거나 또 당했다고 이를 가는 모습들이 가히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보입니다. 정 타협이 안 되는 정치쟁점에는 페널티킥 방식을 도입해보면 어떨까요. 하긴 꼭 승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막가는 불륜드라마도 시청률만 높으면 일단 횟수를 연장할 구실부터 찾는 요지경TV와 방송을 바로잡아보겠다고 진작부터 벼르고 있는 정치판. 그 두 군데서 생산하는 더티게임을 보며, 부디 히딩크의 언어와 행동거지를 좀 흉내라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추억의 예화를 들어보았습니다. 춘설이 난분분하여 입이 큰 개구리도 아직 침묵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시사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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