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고 있는 악재는 악재가 아닌 셈
월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난 2일 미국 다우지수는 전일대비 299.64포인트(-4.24%) 하락한 6763.29로 거래를 마감했다. 12년만에 7000선을 무너뜨린 것이다.
지난 2007년 10월 다우지수는 1만4000선을 넘어섰다. 하지만 17개월만에 다시 1997년 5월1일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바꿔말하면 1997년부터 2007년까지 꼬박 10년이 걸리며 힘겹게 올라선 지수를 고작 17개월만에 맥없이 내준 것이다. 게다가 이는 다우지수가 8000선을 내준지 단 14거래일만이기도 하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 떨어지는 미국 다우지수에 월가에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공포가 생겨났다. 심리적 지지선인 7000선마저 무너뜨리며 좌절하던 찰라에 AIG를 필두로 한 새로운 금융위기의 조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대 보험사인 AIG는 미국 역사상 최악인 617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미 수천억달러를 지원했음에도 말이다.
리먼 사태의 후폭풍을 뼈저리게 느꼈던 미 정부는 또다시 AIG에 추가 자금을 지원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밑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다.
미국기업 뿐만이 아니다. 시가총액 기준 유럽 최대 은행인 HSBC PLC.는 177억달러의 자금을 요청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 회사는 이미 지난해 수익이 70% 급감했고, 6100여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이같은 대형 금융권의 부실은 투자자들의 공포심을 유발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최대 보험사, 최대 은행이 무너져가고 있는 판에 나머지 금융권 처지는 어떻겠냐는 두려움이 12년간의 세월을 가차없이 되돌려놨다.
그렇다고 해서 당분간 펀더멘털 개선 조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천천히 올라선 고지에서 브레이크없이 추락하는 '증시'라는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방법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눈앞으로 빠르게 스쳐가는 놀이동산 풍경을 외면한 채 두 눈을 질끈 감고 떨고 있기 때문에 롤러코스터가 더 무서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뉴스가 나오면 더이상 호재가 아닌 것처럼 이미 알고 있는 악재라면 더이상 악재가 아니게 된다.
롤러코스터 위에서 눈을 뜨고 눈앞의 스쳐가는 풍경을 즐긴다면 두려움은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 물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김지은 기자 je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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