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료 전성시대] <2> 금융계도 전방위 포진
금융위 수장 조직장악 한계.. 이창용은 살아남아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금융시장에 가한 가장 큰 실험은 금융당국의 수장에 투자금융(IB)업계 출신의 민간인 CEO를 영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금융정보분석원(FIU)를 합친 '공룡' 금융위원회의 초대 수장에 민간 출신인 전광우 전 우리금융 부회장이 깜짝발탁되자 금융관료들은 적잖은 충격에 빠졌던게 사실이다.
특히 경제선임부처인 기획재정부에는 MB노믹스의 설계자로 막강 파워를 자랑하던 강만수 장관이, 금감원장에는 금융계 대선배이자 은행장에 금통위원까지 거친 백전노장 김종창 원장이 선임됐을 때는 민간 출신으로 유약한 이미지의 전 위원장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러닝메이트인 부위원장에 학자출신인 이창용 서울대 교수까지 내정되자 '청와대가 공무원 조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혹평까지 나왔다.
하지만 사상 최초의 민간 '투톱'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전광우 위원장은 '메가뱅크론'을 둘러싼 재정부와의 대립, '은행권 M&A 자제론' 등 잇딴 소신행보를 펼치며 관계부처와 금융권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금융위와 금감원 고위직에 민간 출신들을 기용하며 인적쇄신을 추구했고, 각종 맞춤형 정책으로 '서비스형' 금융감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도 보여줬다.
이창용 부위원장도 전문성을 갖춘 인사로 두루 신망을 얻으면서 빠르게 조직을 흡수해 나가며 전광우 위원장을 보좌했다.
이 부위원장은 전 위원장의 낙마에도 불구, 꿋꿋이 자리를 지켜 백용호 공정위원장과 함께 이대통령의 인사실험이 성공한 대표 케이스로 꼽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관료들 사이에서도 이 부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호의적"이라며 "교수출신으로 드물게 관료사회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성공적인 출발을 보였던 민간 투톱이 1년을 채 못채우고 전광우 위원장이 중도하차하게 된 것에는 세계시장을 뒤흔든 미국발 금융위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년간 표류하던 외환은행 매각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전격적인 매각 심사에 착수했지만, HSBC가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하면서 수포로 돌아간 것이 대표적이다.
산은 민영화와 금산분리 완화 등 핵심 개혁정책으로 내세웠던 과제들도 위기론에 후순위로 밀려났다.
금융위기 못지않게 전 위원장의 중도하차를 이끈 것은 관료제적 위계질서와 폐쇄적 문화라는 분석도 있다.
전 위원장은 격식을 깨고 직접 과장급들과도 자유로운 의견을 교환하며 정책에 반영하는 등 파격적 모습을 보였지만, 고위관료들과의 사이는 그다지 원만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이는 곧 조직장악력의 문제로 나타났다.
금융위기를 진화하기 위한 각종 정책 집행에서도 기획재정부, 한국은행과의 신속하게 공조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관료출신들이 적잖게 포진한 정치권의 '악의성 짙은 흔들기' 또한 자주 목격됐다.
금융계 고위인사는 "전 위원장은 관료출신들이 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시도를 많이 보여줬다"며 "다만 은행들을 다그치며 금융위기를 적극 돌파하기에는 카리스마가 부족했고 관료집단의 한계를 뛰어넘기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jmkim@asiae.co.kr
박수익 기자 sipar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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