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와 정부의 양보없는 줄다리기 탓에 국내 에이즈 환자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비정상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제약사의 지나친 이윤추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우세했지만, 반대로 보건당국의 소극적 협상태도에 대한 비판의견도 나오고 있다.
◆약이 없어 '구호물자'에 의지
에이즈 환자 윤 모씨(남, 42)는 '푸제온'이란 에이즈약을 아프리카 등 저소득국가에 약을 지원하는 국제구호단체로부터 받아 복용하고 있다. 병세가 심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푸제온을 복용하고부터 다소 호전됐다고 한다.
윤 씨가 '구호품'에 생명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는 다소 황당하다. 이 약을 개발한 '로슈'라는 회사가 정부가 정해준 약값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5년 째 약 공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슈측은 당초 1년치 약값으로 3200만원 정도를 제시했지만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다. 현재는 2200만원까지 희망치를 낮춘 상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1800만원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보험약값은 제약사와 정부가 협상으로 정한다.
환자 단체는 국내에서 이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100명에서 600명 정도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환자들은 정상적인 약공급이 빨리 이루어지길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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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vs 제약사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다"
보건복지가족부와 로슈의 가격 협상은 현재 잠정 중단된 상태다.
한국로슈의 플루에키거 사장은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지난해 7월 추가 협상을 원한다고 복지부에 서한을 보냈으나 '협상이 끝난 것으로 본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2004년부터 수차례 요구가격을 내려왔지만 복지부는 전혀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며 협상결렬의 책임을 정부쪽에 돌렸다.
하지만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시간날 때마다 협상을 계속 하고 있는 중"이라며 서로 다른 말을 했다.
다만 "복지부는 초지일관 한발도 물러설 수 없으며 이는 정부 뿐 아니라 환자, 시민단체의 공통적 의견이다"며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협상타결이 어려운 상황임을 인정했다.
◆강제실시권 발동이 마지막 변수
복지부도 나름대로 해법을 궁리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리펀드 제도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고 말했다. '리펀드 제도'란 제약사가 원하는 약값을 인정해주고 차후에 일정 금액을 다시 뱉어내도록 하는 방식을 말한다.
하지만 환자들은 복지부가 기본적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으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관계자는 "생명을 담보로 이윤추구에 집착하는 제약사도 문제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 복지부의 의지 부족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푸제온을 필수약제로 분류하는 데 서두르지 않은 점과 약제전문평가위원회라는 최상위 결정기구에 이 문제를 상정하지 않은 복지부의 결정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또 "정부의 철학이 바뀌지 않는 한 이같은 문제는 언제든 반복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보다 못한 환자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 보건관련 시민ㆍ환자 단체들은 지난해 12월 23일 특허청에 푸제온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을 공동명의로 청구했다.
강제실시권이 발동되면 특허와 관계없이 누구든 이 약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된다. 발동여부는 6개월 내로 결정된다.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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