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석기자
국회 뉴스 가운데 법제사법위원회 관련 소식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법원·검찰·법무부 등 법사위 고유 소관 분야의 중요성이 큰 탓도 있지만, 체계·자구 심사권을 이용해 입법을 늦추거나, 법안 내용을 바꾸는 일이 벌어지는 등 이른바 국회의 '상원'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법사위를 어느 당이 차지할지부터, 누가 법사위원장을 맡는지, 법사위에서 어떤 안건을 심사할 것인지 모든 게 뉴스가 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법사위에 과도하게 많은 권한이 부여된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하게 제기됐다.
지난 26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국회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폐지와 유지의 갈림길에서' 보고서는 그동안 제기됐던 법사위 문제점이 망라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법사위는 1951년 제2대 국회에서 도입됐다. 탄생부터 체계·자구 심사권이 부여됐는데, 당시에는 현재와 달리 역할이 제한적이었다. 당시 국회는 '본회의 중심주의'를 채택해 법사위는 일종의 본회의 심의시간을 줄이기 위한 보조적 역할이었다. 하지만 6대 국회에서 '상임위 중심주의'를 채택한 이래로 위상이 달라졌다.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에서 심사한 법안을 통과시킬지, 말지를 결정할 권한을 갖게 됐다. 법사위 권한이 갈수록 비대해져, 입법을 가로막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국회에서는 법사위 개혁 논의가 나왔다. 법사위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부터, 체계·자구 심사를 할 별도의 상임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추미애 국회 법사위원장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6.1.7 김현민 기자
법사위 무엇이 문제였나.
법사위는 지난해 12월24일 본회의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처럼 다른 상임위 권한을 침해한다는 이른바 '월권'지적을 받아왔다. 이 법의 소관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는 허위·조작정보 유통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등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의결했는데,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과정에서 '허위·조작정보의 유통 금지'로 제재를 강화했다. 논란이 커지자 결국 본회의에서는 과방위를 통과한 원안이 수정안으로 다시 제출돼 법사위에서 수정한 안을 폐기하고 처리됐다. 상임위 법안을 법사위가 고쳤다, 결국 본회의에서 상임위안을 다시 제시해 통과시킨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20대 국회에서도 이사회 성별 다양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경우에도 상임위에서 마련한 의무 규정을, 법사위에서 권고 규정으로 수정했다 논란이 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당시 법사위는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법 내용을, 권고 수준으로 낮춰 소관 상임위 입법 의도를 뒤집은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법 역시 사회적 논란까지 거친 끝에, 본회의 표결에서 상임위 안이 다시 수정안이 되어 법사위안 대신 처리된 전례가 있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는 헌법과 기존 법체계에 새로 만드는 법이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입법의 중요성 등을 고려해 이런 확인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 제도는 정치 상황이나 특정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략적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과거 원내 2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을 경우 야당은 1당의 입법에 맞서 법사위에서 법안 심사를 막는 방식으로 입법을 막아섰다. 다수당에 맞서 소수당이 이른바 입법을 저지할 수 있는 정치적 목적으로 법사위가 사용된 셈이다. 법사위에 법안 처리가 막히는 사례가 늘다 보니 국회는 결국 상임위 의결로 법사위를 우회해 본회의에 직회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23건의 법안이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우회해, 상임위 의결로 본회의에 올랐다.
입법조사처는 이 23건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소관위가 법사위에 법안을 보낸 뒤 평균 216일간 심사되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이 가운데는 720일간 법사위에 계류된 법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법사위에 계류만 됐다 임기 만료로 폐기된 법안도 59건에 이른다. 이 법들은 평균 505일간 계류됐다. 법사위가 법안의 무덤 역할을 한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국회 여러 상임위 가운데 법사위는 법조인 출신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상임위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법사위원 다수를 차지한다. 실제 22대 국회 전반기 법사위원 18인 가운데 12인은 법조인 출신이다. 국회의원 5명 가운데 1명이 법조인인 것을 고려하면 법사위에 법조인이 몰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인력배치는 법사위에 요구되는 전문성 등을 고려한 측면이 있지만, 변호사 등 법조인의 이해관계가 과도하게 대표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실제 과거 변리사나 세무사 등 변호사 직역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법안의 경우 법사위는 장벽 역할을 했다.
가령 제21대 국회에서 특허권·상표권 등 지적 재산권 소송에서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대리를 허용하는 내용의 변리사법 개정안이 법사위에 막혀 결국 처리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 법은 과학기술계와 산업계, 특허청 등은 소송비용 절감과 신속성 등을 이유로 찬성했지만,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인 법사위 위원들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세무사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을 삭제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도 16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번번이 법사위에 가로막히다가 20대 국회에서 처리됐다. 당시 이 법이 처리된 것은 법사위 의결이 아니라 소관 상임위 의결로 법사위를 우회한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