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진기자
한미 무역협정 타결 3개월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관세를 25%로 전격 환원하겠다고 선언하며 산업계가 패닉에 빠졌다.
지난해 2·3분기에만 4조6000억원 규모의 관세 폭탄을 맞았던 현대차·기아는 또 다시 충격이 현실화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피지컬 AI 비전으로 주가 상승세를 타던 현대차의 도약은 물론 산업계 전반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가 될 전망이다.
올해 경영 계획을 '관세 15%'에 맞췄던 수출 기업들은 새해 벽두부터 터진 기습 선언에 생산·판매 로드맵이 백지화될 위기에 처하며 속수무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기습 관세 인상 발표에 수출 기업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수출 기업 관계자는 "경영 계획을 15% 관세를 가정해서 짰다"면서 "새해 벽두부터 이렇게 되면 생산, 투자, 판매 계획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관세 정책 대응과 관련해 "방법이 없다"면서 "가격을 올려 현지 점유율을 낮추면 손실은 줄일 수 있지만, 근원적인 시장 경쟁력을 해치게 돼 결국 스스로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 국회가 양국의 역사적인 무역협정을 제정하지 않았으며, 이는 그들의 권한이지만 이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와 목재, 의약품 그리고 기타 모든 상호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과 2025년 7월30일 양국 모두에 유리한 훌륭한 협정을 맺었고, 2025년 10월29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조건들을 다시 확인했다"며 "그런데 왜 한국 국회가 이를 아직 승인하지 않은 것이냐"고 지적했다. 미국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위협한 관세 변경을 시행하겠다는 공식적인 통지는 발표하지 않았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이 실제로 시행된다면 관세 인하 조치는 무역협정을 맺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12일 경기 평택시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기습 관세 인상 통보로 가장 큰 혼란에 빠진 곳은 자동차 업계다. 미국은 한국 전체 자동차 수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증권가가 추산한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21조 5718억원이다.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0% 가까이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4월부터 적용된 25%의 높은 미국 관세 여파다. 현대차는 지난해 2~3분기(4~9월) 미국 관세로 약 2조6000억원의 영업이익 손실을 봤다. 기아 역시 약 2조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부로 미국 관세가 15%로 하향 적용됐으나, 재고 물량 등 영향으로 관세 손실 규모는 4분기에도 여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대미 자동차 수출 관세율이 25%일 때 현대차그룹의 관세 비용은 8조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관세가 15%로 내려가면 현대차그룹의 관세 비용은 5조3000억원으로 3조1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봤다. 결국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관세가 15%에서 25%로 오르면 3조1000억원의 부담을 떠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미 자동차 관세가 25%일 경우엔 현지 생산 말고, 한국에서 수출하는 완성차는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면서 "차를 팔지 않으면 손해는 줄겠지만, 떨어진 점유율은 다시 올리기 쉽지 않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자국 기업을 우선한다는 명목으로, 쿠팡 사태가 이번 관세 조치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 조정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일방적인 통보에 기업들이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한편,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통보와 관련해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통보나 세부 내용에 대한 설명은 아직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 캐나다에 체류 중인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조속히 미국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관련 내용을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