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CES는 어김없이 '한국인 잔치'

정부기관 간판 앞세운 전시장
기술 중심 전시전략 재설계를

"여기가 한국인가요, 미국인가요? '한(韓)합중국(United States of Korea)' 같아요."

지난 9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6' 현장에서 마주친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이 기자에게 농담 삼아 건넨 말이다. 주변이 한국인으로 가득했고 끊임없이 한국어가 들려오는 상황을 빗댄 우스개 표현이었다.

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KICTA) 집계를 보면 CES 2026에 참석한 우리나라 기업은 853곳이었다. 전체 4300여개 기업 가운데 20%를 차지했다.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대기업도 있지만 정부·지방자치단체·학교 같은 국고 지원을 받아 참가한 기업이 총 689개사에 달한 영향이 컸다.

한국의 CES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특히 중소기업·스타트업은 평소 만나기 어려운 전 세계 바이어나 투자자에게 자사 제품과 아이디어를 소개할 수 있겠다는 기대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현장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전시장에서 눈에 띈 것은 치적 쌓기용 '깃발'에 그쳤다. 한국은 올해 중소벤처기업부 'K스타트업 통합관'과 산업통상부 '통합한국관' 같은 복수의 한국관을 구성했고 서울·대전·강원 등 지자체가 자체 부스를 설립하기도 했다. 부스 앞은 기대했던 글로벌 관계자보다 현수막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던 정치인들로 북적였다. 기업이 가져간 혁신 기술이 아니라 곳곳에 내걸린 기관과 지자체 간판이 앞세워지는 아쉬운 모습이 연출됐다.

현장에서 만난 기업 관계자는 "수백억 원을 써서 미국에 전시장을 꾸려봤자 관람객은 한국인이 대부분이니 주최 측에만 좋은 일"이라며 "오죽하면 '서울 코엑스·일산 킨텍스를 넘어 남대문시장 수준'이라는 자조가 나오겠나"라고 했다.

'한국인만의 잔치'가 비단 올해만은 아니었다. CES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의문이 늘면서 대기업 가운데 일부는 이미 발을 뺐다. 삼성전자는 올해 CES 메인 전시관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홀(LVCC) 대신 근처 윈 호텔에 단독 전시관을 조성했다. SK그룹은 지난해보다 참여 규모를 대폭 줄였고, 과거 정기선 회장이 기조연설 무대까지 올랐던 HD현대는 2년 연속 불참했다.

CES를 사진 찍고 관광하는 연례행사로 여겨선 안 된다. 국내 혁신 기업을 해외에 알리겠다는 취지였다면 기관별로 전시공간을 쪼개기보다 인공지능(AI)이나 로봇 등 기술 분야를 축으로 한 통합 전시가 더 설득력 있을 테다. 이참에 세계적 관심을 끄는 대규모 전시회를 국내로 들여올 방법부터 고민하는 건 어떨까.

산업IT부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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