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기자
올해 '코스피 강세장'에도 국내 철강주들은 활짝 웃지 못했다. 미국발 고율관세와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 등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흐름에 균열을 낸 것은 전통적인 특수강 기업 세아베스틸지주다.
지난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의 최다 조회 리포트 목록엔 세아베스틸지주 관련 보고서들이 잇달아 이름을 올렸다. 기존 사업분야를 넘어 우주·항공·방산 소재 기업으로 무대를 넓히며 최근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증권가는 미국 특수합금 공장 가동을 계기로 기업가치 재평가가 본격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세아베스틸지주는 2022년 물적분할을 통해 세아그룹의 특수강 사업 전문 중간지주사로 전환됐다. 현재 , 세아창원특수강, 세아항공방산소재 등을 주요 자회사로 두고, 특수강과 특수합금 소재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특수합금은 주로 항공기·우주발사체·방산·의료산업 분야에 사용된다. 니켈, 티타늄, 코발트 등 합금과 철이 배합된 소재로, 고온·고압 환경을 견뎌야 해 기술 진입장벽이 높다. 단순 가격 경쟁이 아닌 인증·신뢰·장기공급계약이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시장이다.
세아베스틸은 자동차·조선·산업기계용 특수강을 공급하는 핵심 캐시카우(수익창출원)이며, 세아창원특수강은 스테인리스 봉강·선재 등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를 통해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담당한다. 최근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 자회사도 2019년 인수된 세아항공방산소재다.
그간 세아베스틸지주는 철강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항공·방산용 첨단소재로 사업 전환을 가속해 왔다. 글로벌 항공기 소재 시장이 구조적 성장세에 진입하자 선제적 수요 대응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신규 투자에 나선 것이다. 한국우주항공산업협회 '세계항공우주 소재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항공기 소재 시장은 2022년 44조원에서 2032년 102조원으로 약 132%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대 관전 포인트는 미국 텍사스주에 건설 중인 세아슈퍼알로이테크놀로지스(SST)다. 약 2130억원을 투자한 특수합금 공장으로, 내년 상반기 준공이 목표다. 부지 규모는 약 18만㎡로 축구장 25개 크기이며, 연 생산 규모는 6000t이다.
박현욱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통상 철강·소재 업종은 개별 기업의 생산능력 확대가 공장 완공 전 주가에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며 "내년 6월 완공 예정인 SST 가동에 대한 기대감이 세아베스틸지주 주가에 반영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현지 생산이란 점도 중요하다. 항공우주·방산 산업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분야로, 공급망의 지역적 안정성이 핵심이다. 미국 방산·우주 산업은 자국 내 생산 비중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 미국 내 특수합금 공급은 구조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재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 제한과 민항기·군용기 수요가 늘면서 특수합금 시장의 공급부족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는 미국 특수합금 업체인 ATI머티리얼즈(ATI Materials)나 카펜터테크놀로지(Carpenter Technology)의 호실적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회사 모두 설명회에서 '현재 주문이 많이 밀린 상태'라고 전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항공우주·방산용 특수합금 분야는 글로벌 공급자 수가 제한적인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한 번 공급망에 편입되면 장기 계약으로 이어지는 구조여서 실적 가시성이 높다. 세아항공방산소재는 이미 글로벌 항공기 제조사와 장기공급계약(LTA)을 체결한 상태다.
증권가에선 SST를 미국 우주개발 기업 스페이스X(SpaceX)와 연결 짓는 해석도 나온다. 이재광 연구원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내용은 없지만, 세아베스틸지주의 미국 특수합금 설비 투자는 스페이스X와의 거래에서 시작됐을 것"이라며 "스페이스X가 특수합금 소재를 제때 공급받기 어려워지면서 물색한 공급처 중 하나가 세아창원특수강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현지 설비 투자로 이어진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 산업은 단순한 테마가 아니라 장기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며 "항공·우주용 특수합금은 공급 부족이 지속되는 시장으로, 신규 진입자가 제한적이라는 점이 세아베스틸지주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짚었다.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점은 세아베스틸지주의 주가가 스페이스X의 기업공개(IPO) 추진 소식과 함께 이달 들어 80%가량 급등했다는 점이다. 지난 1일 2만7550원(종가기준)이던 주가는 지난 22일엔 5만1300원까지 뛰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9일 종가 4만8650원 기준 0.8배 후반 수준이다.
다만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 수준)에 대한 증권가의 시각은 여전히 우호적이다. 이재광 연구원은 "PBR 등을 고려하면 고평가 영역은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특수합금 생산능력이 10만 톤 수준인 카펜터테크놀로지의 시가총액을 고려하면, SST의 잠재 가치는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 수준까지도 상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