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단체소송이 잇따르고 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이 어려울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활성화돼 있는 미국에서도 재산적 피해 없이 정신적 피해만 있으면 징벌적 손해배상은 잘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배심원이 없는 국내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인정이 더 어려울 수 있다며 쿠팡 사태가 선례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쿠팡 본사.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아시아경제DB.
미국은 2003년 연방대법원 판례(State Farm 대 Campbell 사건)로 정신적 피해만 있는 사건에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잘 내리지 않는다. 위자료가 충분히 크다면 이미 징벌적 성격이 담겼다는 해석이 정립됐기 때문이다.
사건은 교통사고로 두 명의 사상자를 낸 커티스 캠밸이 자신의 보험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었다. 보험회사는 피해자들의 합의 제안을 거절하고 재판을 밀어붙였다가 보험한도를 넘는 배상 판결이 나왔다. 캠밸은 사기적 업무처리로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고 했다. 이후 보험사가 피해자들에게 보험금은 모두 지급했기 때문에 캠밸이 1년여 동안의 겪은 정신적 손해만 쟁점이 됐다.
유타주 대법원은 보험사가 캠밸에게 100만 달러에 더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1억 450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을 깼다. 배상액에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고려됐다면 징벌적 손해배상 기준은 이미 상당 부분 포함된 셈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결정하더라도 배상액의 1대1이나 그에 가까운 배액만 가능하다고 했다.
이원준 법무법인 주원 미국변호사(워싱턴D.C.)는 "연방대법원 판결은 합리적인 한계를 정해준 취지"라며 "주에 따라 1대3이나 많게는 1대9까지 인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은 배심원이 있어 몇 배의 배상을 할지 판단한다"며 "한국은 판사의 재량에만 맡겨져 있어 징벌적 손해배상 결정이 더욱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법관에게 지나친 부담이 된다는 설명이다.
국내에도 정신적 손해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항소심 판례가 있다(인천지법 2021나74344). 재판부는 개인정보보호법상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령할 수 있는 규정은 재산상 피해에만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미국 연방대법원과 비슷한 논리를 따랐지만 열거한 이유에는 "정신적 손해액은 재량에 의해 확정하는 것이어서 (몇 배를 곱할지) 다소 불분명"하다는 점도 있었다.
국내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한 법률은 20여 개 있다. 대개 손해액 산정이 분명한 재산피해를 상정하고 있는데도 법원은 징벌적 손해배상 결정에 소극적이다. 2배 넘는 배상액을 인정한 판례는 찾기 어렵다. 대법원 판결 중에는 공사대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원청에 하도급법에 따라 1.5배 배상을 확정한 판례(2018다23008)가 있다. 이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 사건에는 배심원제를 도입해 법관의 지나친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쿠팡 사태에 단체소송을 제기한 로펌들도 징벌적 손해배상은 쉽게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곽준호(변호사시험 2회)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청구액이 높아지면 인지대와 송달료, 패소 때 부담할 소송비용도 같이 높아진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될 가능성은 작은데 모험적으로 나설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곽 변호사는 원고 4000여 명을 모아 1인당 20만 원 배상을 청구했다.
김수영(변시 3회)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는 이유는 정신적 손해처럼 피해액 산정이 곤란해 이를 벌충해주기 위함도 있지만 사회적 제재와 예방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재 필요성에 따라 배액해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구해야 한다"며 "쿠팡 사태가 선례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동 법률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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