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현기자
검은색의 한복 원단과 가죽 소재를 결합해 만든 가방, 가방의 옆 부분에 달린 것은 댕기다. 댕기 모양을 본떠 장식한 게 아니다. 전통 댕기를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해 완성했다. 이 '댕기백'은 올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등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2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가방을 만든 K패션 스타트업 라이크한은 전통적인 소재로 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 목표는 글로벌 시장이다.
71to96 댕기백. 라이크한
26일 김예린 라이크한 대표는 "전통을 현대적 라이프 스타일로 만드는 K패션 하우스가 목표"라고 말했다. 2022년 창업한 라이크한이 만든 K패션 제품의 브랜드명은 '71to96(칠하나투구육)'이다. 어머니 유현화 디자이너가 1971년생, 딸인 김 대표가 1996년생이어서 지은 이름이다. 라이크한에서 한복 디자이너인 어머니는 전통 소재를 맡고 김 대표는 젊은 세대도 구매할 수 있는 현대적인 제품으로 기획해 시장에 내놓는 일을 한다.
김 대표는 한복을 하는 어머니 곁에서 전통문화 소비 시장이 점점 축소되는 것을 목격해 왔다. 이젠 결혼식을 해도 굳이 한복을 찾지 않는 신랑·신부가 많아졌다. 어떻게 현재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게 전통적인 소재를 풀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게 창업에 나선 계기였다. 그는 "20대인 나도 입을 수 있는 한복,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예린 라이크한 대표(오른쪽)와 유현화 디자이너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라이크한
그렇게 2022년 내놓은 첫 제품은 한복 원단에 트레이닝복 소재를 결합한 것이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긍정적으로 보는 소비자가 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김 대표는 "조선 시대 왕의 곤룡포 문양인 오조룡을 자수 기법으로 표현해 옷을 만들었고 한국적인 정서를 보여주기 위해 경복궁의 밤하늘을 넣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패션에 전통 소재를 도입하는 시도는 꽤 많았지만 기업이나 브랜드로 지속 성장한 사례는 드물다. 김 대표는 그 원인이 '차용'만 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단순한 차용만 이뤄지면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다"며 "라이크한에선 패턴을 만들어도 도합 90년 경력의 한복 디자이너와 양장 디자이너가 함께 만들어 완성도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철저하게 소비자 피드백을 중심으로 제품을 내놓는 전략도 주효했다. 김 대표는 "전체적인 카테고리에서 다양하게 제품을 개발 중"이라며 "제작 과정부터 SNS에 올려 소비자 반응을 보고 출시 제품을 결정한다"고 했다.
라이크한은 의류로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가방, 키링, 모자 등 잡화로 카테고리를 넓혔다. 글로벌 시장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김 대표는 "시즌과 사이즈 등에 따라 구매하는 옷과 달리 가방 등 잡화는 글로벌 소비자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현재 라이크한의 제품은 국내 6개, 해외 3개 플랫폼에서 구매할 수 있다. 또 미국 뉴욕의 편집숍에서 제품을 선보이고 있고 싱가포르 오프라인 매장에도 내년 4월 입점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K팝, K푸드, K뷰티 등을 얘기하지만 K패션 대표 브랜드는 아직 없다"며 "한국 정서를 담은 K패션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