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해 11월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기덕 대표이사. 최 회장은 이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사외이사가 고려아연 이사회 의장을 맡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현민 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이 추진 중인 미국 제련소 건설과 한미협력 자체를 반대한 적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를 명분으로 최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유상증자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를 위한 자금 조달 구조와 재무 부담이 일반 주주 가치도 훼손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22일 고려아연 최대 주주인 영풍·MBK 측은 이같은 내용의 입장자료를 발표했다. 최 회장 측이 자금 조달 구조와 재무 부담을 사실과 다르게 설명하고 있으며, 관련 문제 제기를 '미국 제련소 건설 반대' 또는 '한미 협력 부정'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최 회장 측은 미국이 제련소 건설 자금의 91%를 부담하고, 미국 정부와 전략적 투자자(SI) 및 글로벌 금융기관이 함께 투자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다.
영풍·MBK 측은 "합작법인(JV) 설립 구조상 미국 전쟁부와 SI가 출자하는 금액은 총 6억달러 수준이고 고려아연 역시 약 9000만 달러를 출자한다"며 반면 "미국 정부로부터 조달되는 12억5000만달러는 상환 의무가 있는 차입금"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고려아연이 출자해 설립하는 미국 현지 사업법인지 조달하는 46억9800만 달러 규모 장기 신디케이트론 역시 미국 국방부 및 글로벌 금융기관으로부터 제공되는 차입금"이라며 "고려아연이 최대 2040년까지 8조3900억원의 채무보증을 서는 구조"라고 부연했다.
전액 채무보증이 수반된 차입은 회계·재무적으로 사실상 보증 제공 회사가 직접 차입한 것과 동일한 위험을 부담한다. 결국 고려아연이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책임을 지는 차입구조라는 설명이다.
영풍·MBK 측은 "이를 '미국의 투자'로 설명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인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한 경영권 방어 논란을 희석하기 위한 왜곡된 설명"이라고 강조했다.
자금조달 금리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앞서 최 회장 측은 해당 신디케이트론 금리에 대해 "미 국채 10년물 금리에 175베이시스포인트(bp·1bp=0.01%)를 가산한 저리 자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최근 국내 시장에서 3년물과 5년물 회사채를 각각 3.05%, 3.287%에 발행했다. 그전에도 3% 초반대 금리로 대규모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해 왔다.
이에 비해 미국 신디케이트론은 평균적으로 6%에 가까운 금리 수준으로 두 배에 달한다. 이 차입이 모두 실행되면 연간 이자 비용만 약 4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동일한 금액을 국내 시장에서 조달할 경우보다 막대한 비용이 추가로 드는 셈이다.
영풍·MBK 측은 이번 합작 사업 구조 자체가 지나치게 미국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앞서 최 회장 측은 미 정부 측이 제련소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인허가 및 정책 조율 등 다양한 지원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영풍·MBK 측은 "그 지원의 구체적인 법적 근거, 비용 부담 주체, 수익 귀속 방식, 계약 구조에 대해서는 충분한 공시나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합작법인(JV)은 고려아연 지분 10%를 확보하는데도 JV의 지분 구조, 비용 부담, 수익 배분 관계 전반은 공시에서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 전쟁부에 대한 신주인수권 부여, 현지 제련소 운영법인과 JV 간 주요 계약 조건 역시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영풍·MBK 측은 문제의 본질은 미국 제련소 건설이나 한미 협력이 아니라,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설계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라고 주장했다. 영풍·MBK 관계자는 "미 제련소 건설의 재무적 부담 대부분은 결국 고려아연이 짊어지는 구조"라며 "경영권 방어 목적의 유상증자를 정당화하기 위해 회사의 재무 현실을 흐리는 시도는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