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리기자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물가 상승에 따라 실질 소득이 늘지 않아도 세금 부담이 커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 '물가연동세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야당 간사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22일 국회에서 '물가연동세제 도입 방안'을 주제로 정책 세미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공유했다. 물가연동세제는 과세표준 구간 등을 물가지수에 자동으로 연동시키는 것이다.
박 의원은 "물가 상승에도 과표구간과 공제 제도가 장기간 고정되면서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실질 세 부담이 늘어나는 이른바 '물가 증세' 현상이 누적되고 있다"며 "조세제도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발제자로 나선 고광용 자유기업원 정책실장은 "지난 10년간 소비자물가와 생활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과세 기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근로소득세 부담이 구조적으로 확대됐다"며 "물가연동세제는 새로운 감세 정책이 아니라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 세 부담 왜곡을 조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보완 장치"라고 설명했다.
고 실장은 미국·캐나다 모델을 바탕으로 한 물가 연동 소득세 도입을 제안했다. 물가상승률 수준만큼 과세표준을 조정해 실질 과표 수준을 매년 동일하게 만드는 완전 물가연동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2020년 기준 연봉 6400만원 소득자에게 물가 연동 소득세를 도입할 경우 올해 소득세는 100만원이 감소한다.
토론자로 참석한 권성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도 물가연동세제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다만 물가연동세제 도입에 앞서 소득세제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연구위원은 ▲8단계로 과도하게 세분화된 세율체계 ▲근로소득자 중심의 공제체계 등을 문제로 꼽으며 "세제의 합리화 없이 물가연동제만 도입할 경우 불합리한 공제체계가 그대로 물가연동되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윤성 한국외대 경영대학 교수는 세수 감소에 대비하기 위한 지출 구조조정과 세목 조정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물가연동세제는 세제의 중립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 경제 주체의 의사결정 왜곡을 줄일 수 있다"며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넘어 어떤 물가지수를 어떤 항목까지 연동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설계와 실행 로드맵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이성봉 한국세무학회 회장이 사회를 맡았다. 토론에는 오의식 형제합동세무사 대표, 옥동석 열린사회포럼 이사장, 박홍기 기획재정부 소득법인세정책관 등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