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가 조성되었다. 이 펀드의 핵심은 단연 인공지능(AI) 기술과 산업이다. 세간의 이목은 엔비디아나 오픈AI 같은 거대 기업의 전략에 쏠려 있지만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결코 놓쳐선 안 될 중요한 정책 방향이 있다. 바로 중소기업이 AI 산업의 주역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AI 기반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생산성과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내놓은 AI 지원 정책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부처 간 협력을 통한 '제조 및 산업 AI전환(AX)'의 확산이다. 중기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부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AI 벤처·스타트업 육성과 소상공인의 기술 사업화, 현장 맞춤형 AX 기술 개발을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그동안 부처 간 협력이 말로만 거론되다 성과 없이 끝난 경우가 많았던 점을 고려할 때, 정책 수립의 방점을 실질적인 '공동 추진'에 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둘째, 민간 주도의 중소벤처 연구개발(R&D) 예산 확대다. 특히 민간이 투자를 선택하면 정부가 지원하는 팁스(TIPS) 방식의 R&D 예산을 늘리기로 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팁스는 민간의 선별 역량을 활용해 정책 효과를 극대화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성공에 대한 보상이라는 동기부여가 약한 공공 조직이 본연의 기능이 아닌 사업에 직접 뛰어들면 제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조직이라도 시장의 치열함을 이기지 못하고 실패하기 십상이다. 이러한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민간에 과감히 역할을 위양(委讓)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셋째,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과감한 AI 및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다. 11월 발표된 'AI 기반 중소기업 지원체계 개선방안'은 합리적인 기술 활용과 업무 효율화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혁신을 정부 내부 프로세스에 먼저 적용하겠다는 점이 돋보인다. 제출 서류를 50% 이상 감축하여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생성형 AI로 서류 작성 부담을 줄이며, 피투자 기업 평가나 브로커의 부실 사업계획서 적발에도 AI 모델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업에도 자체 평가용 AI 툴을 제공하는 등 생산성 혁신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방향성과 성과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세계적인 AI 지원 추세가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심으로 흐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중기부는 과기정통부 및 산업부와의 협력 속에서도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명확히 내야 한다. 이는 중소기업의 권리를 지키고 필요한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중기부만이 할 수 있는, 그러나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민간 위양 확대, AI를 통한 조직 내부와 중소기업의 생산성 혁신 등은 그간 실패해 온 혁신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올바른 해법이다. 다만 '맞춤형 플랫폼' '부처 간 협력'과 같이 과거 정책 실패를 따라다녔던 단어들이 다시 등장하는 점은 다소 우려스럽다.
성공적인 정책 안착을 위해 대통령과 장관의 강력한 리더십이 말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이고 세심한 실행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무엇보다 민간에 권한을 넘긴 후에는 '작은 정부'의 역할을 자임하며 간섭을 참아내는 인내, 부처 이기주의를 내려놓고 상대 부처에 과감히 업무를 위임하는 진정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향후 AI 기반 디지털 혁신의 성공을 위해 이 점을 꼭 기억해주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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