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연기자
국회에서 '7세 의무교육'을 사회적 공론으로 검토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해 30조원에 육박하는 사교육이 이른바 '영어유치원'으로 대표되는 영유아 교육부터 시작되고 있어 '극약 처방' 없이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4세고시·7세고시' 등 과도한 유아 대상 영어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법률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국회에서는 취학 1년 전(7세)부터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내용의 법안 마련에 나설 전망이다.
27일 국회와 교육계 등에 따르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경숙 의원실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유아교육법 개정 등 관련 법안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7세 대상 어린이집·유치원을 '의무교육 기관'으로 지정하고, 초등학교 입학 1년 전부터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게 핵심이다.
현행법상 의무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다. 유아교육법에 따르면, 취학 전 3년 유아교육은 '무상교육' 대상이지 '의무교육'은 아니다. 강 의원실은 이러한 의무교육의 범위를 '취학 전 1년'부터로 확대해 영유아 교육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과도한 사교육 의존도를 줄여나가도록 할 방침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취학 전 유아를 대상을 한 영어학원, 이른바 '영어유치원'을 찾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 선행학습을 시키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나친 사교육비 부담과 유아기 영어 학습의 부작용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3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가에서 영어유치원을 마친 어린이들이 하원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교육부가 올 3월 공개한 '2024 유아사교육비 시험조사'를 보면, 취학 전 영유아 가구의 연간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3조3000억원에 달했다. 이 중 사교육에 참여하는 유아 기준 영어에 지출하는 비용은 월 41만4000원으로, 고등학생의 월평균 영어 사교육비(32만원)보다 많았다. 유아기 과도한 사교육비의 주범은 영어유치원으로 지목되는데, 월평균 영어유치원 비용은 154만5000원으로 집계됐다.
영유아기 때부터 영어학원에 매달리는 현상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지난 5월, 강 의원실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전년 대비 서울 241곳(5205개→4964개), 경기 156곳(3429개→3273개)이 문을 닫았지만 폐원된 영어유치원은 각각 34곳, 3곳에 그쳤다. 경기의 경우, 영어유치원은 오히려 개설된 반이 101개 증가했다. 일반 유치원보다는 영어유치원으로, 그중에서도 소규모보다 대형학원 중심으로 학원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육부 장관에게 '7세고시'로 불리는 레벨 테스트와 극단적 형태의 조기 사교육을 제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표명했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과도한 선행사교육이 아동의 기본적인 권리인 건강한 성장과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학계·시민사회 등의 우려에 따른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우울증 등 정신건강의학 관련 질환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을 찾은 0~6세 아동 환자는 2만7268명으로 1만7938명이었던 2020년 대비 1.5배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영유아 시기에 장시간을 앉아서 반복적으로 주입식 학습을 할 경우, 눈 깜빡임과 같은 틱(Tic) 증상, 손톱 물어뜯기, 잦은 분노 표출 등의 다양한 문제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유아 의무교육 시행'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초등학교 중심의 의무교육에서 전 단계 의무교육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면서 "유아 의무교육 기관 지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레벨테스트 등 4세 고시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유아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실시하는 곳이 많다. 강 의원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럽, 북미, 동유럽, 라틴아메리카 등 51개국이 의무 유아교육을 도입하고 있다. 취학 전 1년부터 의무교육인 곳은 54%에 달했고, 2년 전부터 의무교육은 28%, 3년 이상은 17%였다.
이날 영유아 사교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강 의원은 "취학 전 의무교육도 사회적 공론을 시작할 때가 됐다"면서 "영유아의 발달권을 보장하고 부모의 불안과 사회적 부담을 완화하며 건강한 양육 환경을 조성하는 데 국민들의 동참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