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연기자
휴머노이드 기술 경쟁은 가히 '전쟁'이라고 부를 정도로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자율주행, 양자컴퓨터, 전고체 배터리 등 인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꿈의 기술'로 불리는 신기술 중에서도 휴머노이드는 현재 가장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고 꼽힌다. 휴머노이드 업계는 올해가 상용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부터 미국·중국의 주요 로봇 제조사들이 소규모 양산을 시작했으며, 현대차그룹도 이르면 올 10월부터 미국 자동차 공장 생산 라인에 계열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을 시범 투입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을 포함해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휴머노이드 상용화에 나서고 있는 2025년 현재, 과연 각 업체의 기술력은 어느 수준에 와 있을까. 주요 기업 기술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의 핵심 기술은 크게 세 가지다. △로봇을 정밀하게 움직이는 하드웨어 기술 △외부 환경을 인지·판단하고 자율적으로 생각하는 인공지능(AI) △이 두 가지 기술을 통합하는 제어 시스템이다.
우선 하드웨어 기술은 정밀 구동 메커니즘과 고도화된 액추에이터가 필수다.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는 인간으로 치면 '근육'에 해당하는 역할을 한다. 제어 시스템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전기 에너지를 물리적인 움직임으로 바꿔준다. 이때 로봇이 얼마나 사람과 비슷하게 움직일 수 있는가는 '자유도(로봇의 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이나 축의 개수)'에 의해 결정된다. 자유도가 높아질수록 로봇은 더 복잡하고 사람과 비슷한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 업체가 하드웨어 개발에서 가장 애를 먹는 분야가 바로 '로봇의 손'이다. 인간은 손을 통해 가장 많은 작업을 수행한다. 미세 힘 조절이 필요한 손동작을 수행할 수 있어야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진정한 휴머노이드가 된다.
두 번째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고하는 AI 기술이다. 시각, 청각, 촉각, 위치 정보 등 복합 센서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통합해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는 판단과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AI는 필수다. 특히 강화학습을 통해 인간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학습하며 점점 나아지는 '자율성'이 휴머노이드 AI 기술력의 핵심이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도 휴머노이드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마지막 핵심 기술은 정밀한 하드웨어와 AI 두뇌를 연결하는 제어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AI가 내린 판단을 액추에이터 제어기에 전달하는 동시에 센서·모터 상태 등 각종 하드웨어 정보를 AI에 신속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으로 치면 말초신경과 대뇌를 잇는 '중추신경'과 같은 역할이다.
최근 가장 빠른 기술 발전의 속도를 보여주는 업체는 보스턴다이내믹스(BD)다. 지난 21일 업로드된 영상을 보면 BD '아틀라스(Atlas)'의 현재 기술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아틀라스는 세 개의 손가락으로 구성된 그리퍼(인간의 손과 같은 장치)를 이용해 상자 속 부품을 집어 들어 다른 상자에 넣는다. 이때 상자의 뚜껑이 갑자기 닫히면, 확인하고 다시 뚜껑을 열어 작업을 이어간다. 옮기던 부품이 바닥에 떨어지자 이를 인지하고 자세를 고쳐잡은 후 떨어진 부품을 다시 주워 담는다. 기다란 부품과 선반 사이즈가 맞지 않을 것 같으면 부품을 접어서 정리하는 모습까지도 보여줬다. 이번 영상은 BD가 지난해 도요타그룹의 첨단기술연구 자회사인 도요타 리서치 인스티튜트(TRI)와 협업을 발표한 이후 내놓은 첫 번째 영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닫힌 상자를 스스로 열고 부품 정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제공
그동안 로봇 업계에서 BD는 하드웨어에선 '업계 1위'로 인정받아왔다. 과거 버전이었던 유압식 아틀라스는 백덤블링, 고공점프 등이 가능한 놀라운 운동신경을 보여줬다. 뛰어난 운동신경과 균형감각은 그만큼 로봇이 실시간으로 외부 환경을 파악하고, 동시에 빠르고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제어 기술을 보유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생산 현장에서는 백덤블링까지 가능한 로봇은 오히려 과한 스펙일 수 있다. 그만큼 가격도 올라가고 장비도 무거워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BD는 지난해 가벼운 전동식 신형 아틀라스를 선보였다. 장비를 단순화해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TRI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AI와 로봇 제어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TRI는 자체 개발한 LBM(대규모행동모델)을 적용해 아틀라스가 다양한 상황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복잡한 조작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LLM(거대언어모델)이 엄청난 언어 데이터를 학습해 글을 이해하고 새로운 문장을 생성해 낼 수 있는 거대 신경망이라면, LBM은 다양한 행동 동작을 이해하고 학습해서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행동을 실행하는 신경망이다. BD의 뛰어난 하드웨어 기술력과 TRI의 LBM 기술의 만남만으로도 업계는 아틀라스의 빠른 기술 성장에 긴장을 느끼고 있다.
미국 휴머노이드 업체 피규어AI는 휴머노이드 로봇용 기계학습(머신러닝) AI 모델 헬릭스(Helix)를 선보였다. 이 AI의 핵심은 두 대 이상의 로봇 협동 작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과거 이 회사는 챗GPT를 만든 오픈AI와 협업을 통해 휴머노이드 개발을 해왔으나, 올해부터 독자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물로 처음 공개된 휴머노이드 AI 학습 모델이 바로 헬릭스다. 휴머노이드 로봇 '피규어02'에 적용된 헬릭스는 VLA(비전·언어·행동) 모델을 활용한다. 로봇이 카메라로 주변을 인식하고 사람의 자연어 명령어를 이해하며, 그에 맞는 행동을 수행한다.
피규어AI의 휴머노이드 로봇용 기계학습(머신러닝) AI 모델 '헬릭스'가 적용된 휴머노이드 로봇. 두 대의 로봇이 서로 협력하며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피규어AI 유튜브 캡처
예를 들어 헬릭스가 적용된 로봇 앞에 계란과 케첩, 사과, 쿠키 등을 늘어놓고 "이 물건들을 정리해줘"라고 말하면 2대의 로봇은 냉장과 실온 보관 물건을 분류해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한 로봇이 다른 로봇에게 물건을 건네주는 장면이다. 두 로봇은 눈맞춤을 하듯 서로를 바라보고 물건을 건네주고 받는다. 계란같이 깨지기 쉬운 물건을 전달할 때도 손의 힘을 조절하고, 냉장고를 열어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한 로봇이 사과를 놓을 자리를 찾자 다른 로봇은 그릇을 건넨다. 정리가 끝난 후 로봇들이 냉장고 문과 서랍을 닫으면서 영상은 마무리된다.
헬릭스가 적용된 로봇은 각자 인지한 시각 정보, 행동 계획, 동료 로봇의 상태 데이터 등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면서 협업한다. 통신이 지연될 경우를 대비해 전용 프로토콜과 고속 무선 통신 기술을 사용하며, 만일의 네트워크 장애가 있을 때도 자체 적응할 수 있는 '내결함성 메커니즘'이 적용됐다. 현재까지 공개된 기술 수준으로만 보면 헬릭스가 적용된 휴머노이드는 자연어와 상황 인식, 응답 성능 등 측면에서 가장 똑똑한 휴머노이드 중 하나로 평가된다. 다만 아직 이 로봇은 상체만 움직일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차세대 혁신 기술로서 휴머노이드의 존재를 널리 알린 인물이다. 머스크는 2021년 '테슬라 AI 데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개발하고 있다고 처음 밝혔다. 테슬라는 2022년 9월 옵티머스의 프로토타입을 공개했고, 2023년 중반에는 1세대 옵티머스, 2024년 4월에는 2세대 옵티머스를 공개했다. 현재는 3세대 모델을 개발 중이다.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대목은 테슬라의 개발 속도다. 처음 개발 사실을 공개했을 때만 해도 농담처럼 여겨졌지만, 테슬라는 2년 만에 완제품을 만들어냈다.
옵티머스의 가장 큰 강점은 테슬라의 자사 자율주행 AI 기술을 휴머노이드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테슬라는 FSD(Full Self-Driving) 기능을 통해 방대한 자율주행 데이터를 축적해 왔으며, 자율주행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자율주행 AI의 핵심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현재 상황을 판단해 적절하게 기기를 제어하는 기술 연결성에 있다. 이 같은 자율주행 기술 메커니즘은 로봇 제어 기술과도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테슬라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가 손을 활용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테슬라 유튜브 캡처
테슬라의 또 다른 강점은 양산 능력이다. 자동차 생산을 통해 축적된 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빠르게 로봇 양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또 전 세계에 분포한 테슬라 공장의 일부 생산 라인을 로봇 생산 라인으로 전환할 경우, 현지 생산과 인접 국가로의 수출 등 다양한 전략적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다만 이는 테슬라뿐만 아니라 뛰어난 제조 역량을 보유한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BD에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가장 최근 공개된 영상에서 옵티머스는 공장 안의 사람과 기계 등을 피해서 유유히 걸어 다닌다. 손으로 작은 배터리를 박스에 옮겨 담기도 하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물건을 건네주기도 한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스스로 가까운 충전 스테이션을 찾아 충전한 이후 작업을 이어간다. 테슬라는 올해부터 옵티머스의 소규모 양산을 시작했다. 하반기에는 생산 물량을 수천 대로 확대해 물류센터나 전기차 제조현장에 전략적으로 배치할 계획이다. 2026년부터는 본격적인 대량 생산과 상용화가 목표다. 대당 2만달러(약 2800만원)로 판매 가격을 낮추는 것이 1차적인 과제다.
국가 경제에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중국은 휴머노이드에 진심이다. 전 세계 휴머노이드 관련 기업 236개 중 중국 기업이 140개로 절대적으로 큰 비중(59%)을 차지했으며, 지난해 공개된 휴머노이드 로봇 51개 모델 중 중국 업체가 만든 모델이 35개에 달했다. 특히 제조업이 주력 산업으로 로봇과 자동화에 관심이 많은 중국은 로봇 하드웨어 관련 기술이 독보적이다. 반면 미국은 로봇을 스스로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도 AI 기술 개발에 집중하면서 휴머노이드 영역에서도 중국이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다.
유비테크는 중국 내에서도 가장 상용화에 앞선 휴머노이드 업체다. 이 회사는 이미 BYD, 니오, 지리자동차, 베이징자동차, 폭스바겐 등 다양한 완성차 브랜드의 중국 공장 생산 라인에 휴머노이드 로봇 '워커(walker) S'를 공급해왔다. 현재 글로벌 휴머노이드 업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고객사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첫 번째 버전인 '워커 S1'의 가격은 7만달러(9600만원) 수준이며, 최근에는 절반 가격의 저가형 모델 '티안공 워커(Tiangong Walker)'가 공개되기도 했다.
워커 S의 기술력 또한 상당한 수준이다. 영상 속 로봇은 작은 스티커를 집어 자동차 차체에 붙이는가 하면, 무거운 상자를 들어 올릴 때 2대의 로봇이 상자의 양쪽 끝을 잡고 함께 협력하는 협동 로봇으로서의 수행 장면도 보여준다. 한 달 전 공개된 '워커 S2'의 영상은 더 충격적이다. 로봇이 일하던 중 배터리가 방전되면 스스로 배터리 스테이션으로 걸어간다. 로봇은 손을 뒤로 뻗어 등에 장착되어 있던 배터리를 빼내고, 스테이션에 풀충전된 배터리를 다시 스스로 끼워 넣는다. 충전 대기 시간을 줄여 작업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술이다.
중국 유비테크의 휴머노이드 로봇 '워커 S2'가 스스로 충전된 배터리를 교환하고 있다. 유비테크 유튜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