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환기자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임 금융감독원장으로 이찬진 변호사가 깜짝 발탁되면서 금융권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이 원장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에서 주로 활동해온 만큼 금융시장의 개혁과 신뢰 회복, 소비자 보호 강화 등 혁신정책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 임명 이후 주요 금융회사들은 신임 원장의 과거 이력과 성향 등을 파악하는 데 분주하다. 이 원장의 성향에 따라 향후 금융정책과 감독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금융사는 이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1964년생인 이 원장은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18기로 수료했다. 이후 민변 부회장과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주로 진보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이 원장의 경력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이번 인사가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도 많다. 금융권 경력이 많지 않아 과거 이력과 성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국내 금융사의 한 임원은 "이 원장의 금융권 경력이 많지 않아서 주변에 가까운 금융권 인사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금감원 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사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정보가 제한적이라 신임 원장에 대한 평가 자체가 조심스럽다"고 언급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금융시장의 개혁에 관해서 강한 소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모든 경제 주체가 공정한 과실 배분에 대한 신뢰 아래 혁신과 가치 창출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시장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는 혁신의 토대 또한 조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금융은 효율적 자원배분이라는 그 본연의 역할로 인해 이런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는 점도 금융권이 긴장하는 이유다. 그는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로 당시 노동법학회 활동을 같이하고, 최근에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을 변호하는 등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과거 이 원장으로부터 5억원에 달하는 큰돈을 빌리는 등 '절친'임을 증명하는 일도 있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은행이 이자 놀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등 여러 차례 금융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 원장이 이에 대한 실질적인 이행을 강조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원장이 전임 이복현 원장보다는 비교적 온건한 성향이라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는 과거보다 나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전임 금감원장은 업무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상급 기관인 금융위원회를 제치고 금융정책과 감독을 주도하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원장은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떤 괴물이 왔나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의외로 과격한 사람은 전혀 아니다"며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할 만한 어떠한 액션도 당장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기자실을 찾아 기자들에게 간단한 취임 소감을 밝히고 있다. 문채석 기자
과거 경력을 놓고 봤을 때 이 원장이 향후 자본시장 체제 개선에도 큰 힘을 쏟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 원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으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활동했다. 당시 그는 기관투자가의 기업 의사결정 참여를 확대하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 많은 공헌을 했고, 그 이후로도 부당한 의사결정을 하는 기업들에 국민연금이 대표소송을 제기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취임사에서도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은 주주가치를 중심으로 공정한 거버넌스(지배구조)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상법 개정안의 성공적인 안착을 지원해 대주주와 일반주주 모두의 권익이 공평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질서를 잡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주가조작이나 독점 지위 남용 등 시장의 질서와 공정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으로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이 원장이 기업 거버넌스 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 원장이 금융 전문가가 아니라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가 있다"면서도 "오히려 자본시장 개혁을 소신 있게 실행하기 위해서는 관료나 학자보다 이해 상충이 없는 금융권 밖에서 발탁한 인사가 좋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포럼은 "이 원장이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문제인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 문제 해결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