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열기자
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산정체계를 다시 손보기로 가닥을 잡았다. 앞서 문재인 정부에서 '현실화 계획'을 마련해 연도별로 순차적으로 높이기로 했다가,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를 뒤엎고 '합리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낮은 수준으로 되돌린 바 있다. 최근 5년 새 산정방식이 정반대로 바뀐 상황인데, 이번 또다시 개정에 들어간 것이다. 정권 기조에 따라 공시가격 산정체계가 오락가락하면서 혼선을 가중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경실련 관계자들이 서울 아파트 시세 및 공시가격, 보유세 분석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17일 관계부처 설명을 종합하면,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수정방향 검토 연구' 용역을 발주한다. 이를 위한 용역 제안요청서를 통해 "기존 '현실화 계획'의 재추진, 또는 공시법 개정을 통한 '합리화 방안'의 추진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새정부 국정기조 등을 고려한 공시정책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요청서 안에는 현실화 계획의 수정 방향에 대한 용역보고서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정부가 외부기관에 용역을 맡기는 일 자체는 기존 정책의 방향 등을 바꾸기에 앞서 진행하는 사전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용역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내놓은 현실화 계획에 대해 이행 과정에서 성과를 분석하는 한편 도입 후 2년간 적용했던 과정에서 한계를 분석하기로 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 2025.06.27 윤동주 기자
부동산 공시가격은 토지공개념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1989년 도입됐다. 토지나 주택(단독·공동)에 대해 해마다 적정가격을 매겨 공표하는 제도로 조세·복지 등 각종 행정업무 67곳에 쓰인다. 공시가격은 시세, 즉 실제 시장가치와 차이가 있다. 이를 바로잡겠다는 게 현실화 계획의 목표였다. 2019년 당시 정부 진단에 따르면 표준지 공시지가의 시세 반영률은 65%, 단독주택은 53%, 공동주택은 68% 수준에 그쳤다. 이를 해마다 조금씩 높여 2035년께 90%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했다. 2020년에는 부동산공시법이 개정되면서 시세 반영률 목표치를 정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걸 의무화해둔 상태였다.
이 계획을 뭉갠 것은 윤석열 정부다. 시세 반영률을 2020년 이전 수준으로 되돌렸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현실화 계획 폐지를 공공연히 밝혀왔다. 다만 임기 내내 여소야대 국면이 이어졌던 탓에 법을 바꾸지는 못했다. 국토부는 "인위적인 공시가격 인상이 아닌 균형성 제고"라는 명분을 들어 지난해 '합리화 방안'을 새로 내놨다.
국토부는 이번 용역을 준비하면서 이 합리화 방안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국토부는 "부자 감세, 투기 유발 등 그간 제기된 합리화 방안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보완 방안을 제시"하는 걸 용역의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주거권네트워크를 비롯한 주거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주거·부동산 정책 제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5.6.17 조용준 기자
'현실화 계획'과 '합리화 방안' 모두를 다시 보기로 한 셈이지만, 현실화 계획을 토대로 한 수정 방향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용역의 이름 자체가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수정방향 제시'다. 현실화 계획에 무게가 쏠릴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전후로 '세금으로 집값 잡지 않겠다'는 점을 공언해왔다. 다만 이번 현실화 계획이 수정되면 세제를 건드리지 않고 보유세 부담을 높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현실화 계획을 수정하면서 공시가격 인상 폭이 예년보다 높아지게 된다면 보유세 부담도 그에 맞춰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부동산세는 시세 대비 낮은 공시가격에 정부가 임의로 정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해 산정한다.
국토부는 이번 용역 결과의 적용 시점은 따로 명시하지 않았다. 다만 용역 과제가 1년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일러야 내년에 제도를 바꿔 후년 새 체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공시가격 제도를 두고 정확도나 신뢰성 부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 만큼, 중장기적으로 이를 제고할 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장경석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인위적인 시세 반영률 조정 방식을 지양하고 객관적인 시장 가치를 반영할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단기적으로 현행 법령 체계 내 산정기준을 명확히 하는 한편 유형별 특성화된 평가 방법 도입, 가격·과세 정책 분리, 첨단기술을 활용한 고도화 등 단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