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영기자
산업재해를 차단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보다 분명해지고 속도도 더 붙을 전망이다. 정부는 원청의 실질책임 강화를 핵심으로 제도 개편을 병행해 사고가 곧바로 손실로 이어지는 비용구조를 만들어 다단계 하도급과 위험의 외주화로 분산돼 온 책임을 발주·원청 단계에 집중시키고, 안전비를 공정별로 의무 계상하도록 계약 관행을 손볼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12일 국무회의에서 산업재해 관련 관계부처 보고를 받기 전 "필요하면 관련 법을 개정해서라도 후진적인 '산재 공화국'을 반드시 벗어나도록 하겠다"며 강경한 메시지를 냈다. 이 대통령은 중대재해 발생 기업의 공공입찰 자격 영구 박탈과 금융 제재, 과징금 도입, 안전 미비 사업장 신고 시 파격적 포상 검토까지 지시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향해 "직을 걸 각오로 임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사실상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산업재해와 관련한 대통령의 메시지는 국무회의를 거듭할수록 단호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에는 죽음이 너무 많다. 살기 위해 갔던 일터가 죽음의 장이 되어선 절대로 안 된다"며 "비용을 줄이려다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작업은 "엄정하게 제지"하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의 메시지가 단호해지는 배경에는 산업현장에서 되풀이되는 노동자의 죽음이 있다. 지난달 초 맨홀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이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지적한 산재 사망사고는 5건에 이른다. 국무회의 생중계 하면서 관계 부처에 대책 마련을 지시했지만, 경기 의정부 신축아파트 현장에서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은 여름휴가를 마친 직후인 9일 "모든 산재 사망사고는 직보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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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입법 과제로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국가계약법, 건설산업 관련 법령 개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공공조달 입찰 제한과 과징금 상향, 금융제재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재해 다발 사업장'에 대한 반복 가중 제재도 제도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과잉 규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처벌 기준과 적용 절차를 세분화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현장에 대한 대응도 강화될 전망이다. 안전조치가 미비한 작업은 즉시 중지하고, 특별감독을 상시화해 추락·끼임·질식 등 고위험 공정을 선제 점검하는 식이다. 사고·위험 데이터를 업종·지역별로 축적해 집중 점검을 하고, CCTV·센서 데이터 등 디지털 안전관리의 의무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방안이 검토된다. 여기에 안전 미비 사업장 신고 시 파격적 포상하는 제도를 도입해 입체적인 감시체계를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차단을 위한 강도 높은 대책을 지시하자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수사가 빨라졌다. 전날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고속도로 공사 현장의 미얀마인 근로자 감전 사고와 관련해 경찰과 노동부가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사고 발생 8일 만이다. 경찰과 노동부는 압수수색에 70여명을 투입해 11시간 동안 포스코이앤씨 본사를 포함해 하청업체 LT 삼보 본사, 감리사인 경호엔지니어링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