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여러 유럽 정상과의 통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당장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다는 점을 일부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통화에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아직 전쟁을 끝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도 속으로는 전쟁을 끝내고 싶어한다'던 그동안의 판단을 뒤집은 셈이다.
AFP연합뉴스
WSJ는 "유럽의 정상들은 이미 푸틴 대통령의 이런 의중을 어느 정도 짐작해왔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판단도 이젠 그들과 비슷해졌다는 사실을 밝힌 것은 처음"이라고 짚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19일 연이틀에 걸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과 통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과 통화한 시점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시간 통화'를 하기 전이었다고 WSJ는 덧붙였다.
이틀간 이뤄진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례로 앞서 이뤄진 18일 통화에서 그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의 휴전 제안을 거부하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튿날 통화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실무 회담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WSJ는 전했다. 협상이 휴전보다 먼저라는 러시아 쪽 요구로 기운 셈이다.
종전 중재 의지도 다소 옅어졌다. 18일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키스 켈로그 우크라이나전쟁 특사 등을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 회담에 파견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하루 뒤 19일에는 미국의 역할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유럽 정상 일부가 주장하는 '조건 없는 휴전' 방안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조건 없는'(unconditional)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고, 그런 말을 써본 적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과의 통화에 관여한 한 인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어조가 긍정적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러시아가 휴전안을 거부하는 경우 미국 역시 제재안을 지지해줄 것 같은 인상을 느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푸틴 대통령과 2시간 통화한 이후 러시아 측 주장으로 쏠린 모습으로 유럽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WSJ는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