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기자
자신의 병원에서 의료용 마약류를 불법으로 투약해온 의사, 야구선수, 조직폭력배 등 투약자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13일 브리핑을 통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60대 초반 남성 A씨, A씨의 배우자(총괄) 등 상담실장 4명, 간호조무사 10명, 투약자 100명 총 115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1월 구속·송치됐고, 다른 114명도 검찰에 송치됐다. 투약자 중에는 전 프로야구 선수인 오재원씨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병원에서 미용시술을 빙자해 마취제 계열의 마약류를 총 1만7216회 투약해 41억4051만원을 불법 취득한 혐의를 받는다. 1회 투약 당 20~30만원을 받았다.
A씨는 수면마취제 계열의 마약류(프로포폴·레미마졸람 등)를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전신마취제인 에토미데이트와 병용해 총 105명에게 투약했다. 105명 중 입건되지 않은 5명엔 사망자와 이미 마약 상습투약죄로 처벌된 일명 '람보르기니남' 홍모씨가 포함됐다.
경찰은 범죄수익 환수를 위해 A씨의 현금 8304만원을 압수했고, 부동산 등 재산 33억2314만원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기소 전 추징보전을 결정받았다.
A씨는 불법 투약자의 마약류 투약기록 2703건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미보고하거나 거짓 보고한 혐의와 진료기록 559건을 거짓으로 작성하고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부정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이는 마약류관리법, 의료법, 주민등록법 위반에 해당한다.
A씨는 2023년 1월부터 11월까지 수면 목적으로 프로포폴 등의 수면마취제를 본인 스스로 또는 간호조무사들을 통해 본인에게 투여하는 등 총 16차례 '셀프 투약'한 혐의도 받는다. A씨를 제외한 배우자, 상담실장, 간호조무사는 불법 마약 투약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로부터 투약받은 100명은 본인 또는 타인 명의를 이용해 각 6~887회 의료용 마약류를 불법 투약받은 혐의를 받는다. 이들 중 2명은 수면마취에서 깨지 않은 상태로 퇴원하자마자 자동차를 운전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투약자가 낸 사고로 인해 불법 영업이 발각될까 봐 퇴원 전 투약자에게 마취에서 빨리 깨는 해독제를 사용해온 사실도 확인됐다.
투약자 100명 중 83명이 20~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투약자 중에는 1일 최대 28회에 걸쳐 연속으로 마약을 투약받거나 하루에 1000만원 또는 투약 기간 총 2억2400만원을 지출한 경우도 있다.
경찰은 A씨가 지난해 5월 해당 의원이 수사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버젓이 범행을 계속해왔다고 설명했다. A씨는 불법 투약자만을 대상으로 일요일 영업을 하거나 식약처장에게 마약류 사용 보고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투약자들에게 1회당 10만원의 추가 비용을 받기도 했다. 일부 투약자에게는 생일 기념, 출소 기념 등 서비스 투약을 제공하고 전문 상담직원 두는 등 불법 투약자들을 관리해온 사실도 확인됐다.
A씨는 전신마취제인 에토미데이트가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은 점을 악용했다. 에토미데이트는 프로포폴과 효능·용법이 유사하다. A씨는 범행 초기에는 프로포폴만을 사용했으나, 2023년 5월부터는 보건 당국의 단속을 피하고 입소문을 통해 점차 늘어나는 불법 투약자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프로포폴' 외에도 '레미마졸람'과 '에토미데이트'를 병용해 투약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의료용 마약류는 투약은 물론 용법, 용량에 따라 사용해도 쉽게 중독될 수 있어 꼭 필요한 상황 외에는 회피해야 한다"며 "에토미데이트가 마약류로 지정되기 전에 대량 불법 유통될 수 있어 이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