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희기자
주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 대출 부실 리스크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른바 '부실채권'으로 불리는 고정이하여신의 70%가 기업 대출로 나타나면서다. 이자도 못 받는 '깡통 대출'인 무수익여신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9%가량 급증했는데, 무수익여신의 72%가 기업 대출로 파악됐다. 특히 최근 환율이 1500원 선도 위협하면서 기업들의 환차손도 커져 대출 상환 여력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3분기 기준 고정이하여신은 5조5821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4조3420억원) 대비 약 29% 늘어난 수준이다. 고정이하여신은 은행 건전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로, 금융사가 내준 여신에서 통상 석 달 넘게 연체된 여신을 뜻한다. 금융사들은 자산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분류하는데, 이 중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을 묶어 고정이하여신으로 불린다.
특히 고정이하여신의 73%가 기업 대출로 나타났다. 5대 은행의 기업 고정이하여신은 4조520억원으로 전체의 약 73%를 차지한다. 이는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로 대출 성장이 막히자 기업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려온 영향으로 풀이된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의 기업 고정이하여신이 전년 대비 5006억원 늘어난 1조1836억원으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했다. 이어 NH농협은행이 1조470억원(+3563억원)을 기록했다. 하나은행은 6106억원(+1051억원), 우리은행이 5365억원(+745억원)을 차지했다. 신한은행의 기업 고정이하여신은 6743억원(-46억원)으로, 5대 은행 중 유일하게 전년 대비 기업 고정이하여신이 줄었다.
대출을 내어주고도 이자도 받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 대출'인 무수익여신도 크게 늘었다. 무수익여신은 3개월 이상 연체되거나, 법정관리 등으로 이자 수입이 없는 대출을 의미한다. 시중 5대 은행의 무수익여신은 올 3분기 기준 4조277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6% 늘었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총여신이 7.8%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증가세다.
5대 은행의 무수익여신 중 3조597억원에 해당하는 72%가 기업 대출로 드러났다. 특히 NH농협은행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는데, NH농협은행의 무수익여신 1조1005억원 중 기업 대출은 846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2.3%(3602억원) 급증했다.
더욱이 우려스러운 건 환율이 1500원 턱밑까지 치솟으면서 향후 기업들의 상환능력이 개선되기 힘들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점이다. 환율이 오르면 기업의 환차손이 커져 영업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통상 수출기업은 환율이 오르면 이익을 볼 것이라 생각하지만 대부분 원자재는 수입에 의존해 매출 증대 효과는 미미하거나 오히려 마이너스다. 산업연구원은 환율이 10% 오를 경우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은 0.29%포인트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중소기업의 경우엔 더욱 심각하다. 중소기업벤처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경우 환율이 1% 오르면 손해가 0.36%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그동안 고금리가 이어져 온 데다, 내수 부진 등으로 부실이 많이 발생했다"며 "이제는 정치적 불안에 이어 환율까지 치솟아 앞으로 금리 인하기에 접어들더라도 당분간 기업 대출의 질 악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