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송승섭기자
정부가 에어컨이나 냉장고의 냉매로 쓰이는 ‘수소불화탄소’ 사용을 10년 안에 2000만t 줄이기로 했다. 지구온난화에 악영향을 끼치는 물질임에도 국내 산업에 무분별하게 활용되고 있어 관리가 시급하다는 이유다.
환경부 등 관계부처는 18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수소불화탄소 관리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수소불화탄소는 에어컨의 냉매나 단열재의 발포제, 소화설비의 약제로 쓰이는 합성물질이다. 오존층파괴물질을 대신하기 위해 개발됐지만, 정작 지구온난화지수(GWP)가 매우 크다. 지구온난화지수는 화학물질 1kg이 지구에 방출됐을 때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 수치인데, 수소불화탄소의 지구온난화지수는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1만2400배나 크다.
정부는 수소불화탄소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지구온난화지수가 낮은 제품으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가령 현재 가정용 냉장고에 쓰이는 냉매의 수소불화탄소는 지구온난화지수가 1300 정도다. 하지만 2027년부터는 가정용 냉장고를 만들 때 지구온난화지수가 낮은 냉매를 써야 한다.
이 같은 전환은 지구온난화지수가 낮은 물질을 사용하는 제품부터 시작한다. 정부는 내년부터 물질을 바꾸는 중소·중견기업의 부담완화를 위해 국고보조사업 지급을 검토한다. 2026년에는 대체물질이나 핵심부품과 관련된 연구개발을 시작한다. 인증제도 개선과 공공기관 의무구매를 통해 관련 제품의 활성화 도모도 이뤄진다.
전주기 관리체계도 마련된다. 사용단계에서는 제조업체와 유지관리업체에 냉매 사용량 신고 의무를 부여하고, 관리대상 및 점검 확대를 통해 누출관리를 강화한다. 폐기단계에서는 재생냉매 사용을 촉진한다. 폐냉매의 원활한 회수, 운반, 재활용을 위해 인프라 구축 및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품질인증체계 역시 마련한다. 냉매 사용량이 많은 업체에는 재생물질 사용 의무를 부과한다.
정부가 수소불화탄소 감축 방안을 내놓은 배경에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있다. 정부는 파리국제협약에 따라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지에 대한 목표를 5년마다 제출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온실가스 물질에 수소불화탄소를 포함하면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바뀐 기준을 적용해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다시 계산하면 총 4470만t이 늘어나는데 이 가운데 절반(2230만t)이 수소불화탄소 때문이다.
수소불화탄소 사용을 줄이지 않으면 환경정책 전반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수소불화탄소 소비량은 2020년 이후 최근 3년간 2만7459t에 육박한다. 특히 국내 냉동·냉장용 냉매의 71%가 수소불화탄소로 만들어졌다. 국내에서 체계적인 전환정책이 없어 관성적으로 사용하던 물질을 쓴 탓인데, 이를 억제하지 않으면 2034년까지 배출량이 늘어날 전망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수소불화탄소 사용을 줄여나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일부 품목에 수소불화탄소의 사용을 제한하고, 지구온난화지수가 낮은 제품을 쓰도록 강제한다. 올해부터는 2050년까지 수소불화탄소 사용량을 완전히 없애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도 2015년부터 제품별로 지구온난화지수 목표치를 부여해 수소불화탄소 배출을 억제한다. 미국의 경우 사용제한, 제조·수입 관리 등을 통해 2036년까지 수소불화탄소 사용량을 2011~2013년 평균 대비 85% 감축하기로 했다.
정부는 개선방안 이행을 위해 법령을 정비하고 제도의 운영·관리를 위한 조직 및 인력을 내년에 확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