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정기자
"빼앗긴 국민의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
대선을 8개월여밖에 남기지 않은 2021년 6월 29일.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공정의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며 정치 참여를 선언하며 혜성같이 등장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022년 단 한 번의 선거로 대통령이 됐다. '강골 검사' 이미지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어록을 남기며 정치 타성에 젖지 않은 인물로 차별화하며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정권교체의 기쁨은 짧았다.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윤 대통령은 직무 정지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1일 만이자, 취임 후 949일(2년7개월여) 만이다. '빼앗긴 국민의 주권을 되찾겠다'며 대권에 도전했고 또 이뤘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 기본권과 주권을 침해하는 '계엄선포'로 더이상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
탄핵안 가결 직후 약 1시간 뒤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윤 대통령은 4분30분 분량의 영상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수사와 탄핵 심사에 적극 대응을 시사한 것이다.
앞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안 가결 직후 입장 발표에서 "저의 부덕과 불찰로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며 국민에 대한 사과에 방점을 찍었다면, 윤 대통령의 마지막 담화문은 결이 달랐다. "고되지만 행복했고 힘들었지만 보람찼던 그 여정을, 잠시 멈추게 됐다"고 언급한 윤 대통령은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을까 답답하다"며 속내를 토로하기도 했다.
정치권에는 "이제 폭주와 대결의 정치에서 숙의와 배려의 정치로 바뀔 수 있도록 정치 문화와 제도를 개선하는 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달라"며 계엄 선포 당시 밝혔던 야당의 폭주를 거듭 비판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일관되게 붉은색 계열의 넥타이를 착용한 윤 대통령은 '탈당' 가능성을 일축하며, 지지층 결집을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
직무가 정지되기 전 마지막 담화는 몇 가지가 달라졌다. 윤 대통령은 기존 4번의 담화의 경우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진행했지만 마지막 담화는 한남동 관저에서 촬영했다. 윤 대통령이 선 단상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표식이 사라졌다. 윤 대통령은 강경한 어조로 담화를 이어갔지만, 프롬프터 없이 원고를 읽다 보니 담화문을 읽기 위해 자주 고개를 숙이는 장면도 포착됐다. 이날 담화 역시 언론에 사전 공지 없이 이뤄졌다.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안 가결 직후 마지막 담화까지 총 5번의 담화는 한 건 한 건이 긴박한 분위기에서 작성되고 발표됐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됨에 따라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후속 대응을 차근히 준비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대통령실의 권한대행 보좌 방안 등을 보고 받았다. 한 권한대행과 정 실장의 면담은 약 1시간가량 이어졌으며 이 자리에는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방기선 국조실장 등이 배석했다. 정 실장은 "앞으로 비서실이 권한대행을 보좌해야 하므로 업무 협조 문제 등을 전반적으로 논의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