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다연기자
"오늘 눈도 오고 앞으로 밤이면 더 추워질 텐데 갈 데도 없어요."
27일 낮 12시께 찾은 서울 종로구의 탑골공원 인근.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에도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수십 명의 어르신이 줄을 서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씨(87)는 "낮에야 경로당도 있고 돌아다니기도 수월한데 밤에는 갈 곳이 없다"며 "정부나 시에서 운영하는 쉼터를 가봐도 '오늘은 토요일이다' '오늘은 줄 물이 없다' 이러면서 이리저리 말만 많고 눈치가 보여서 그냥 나온다"고 털어놨다.
이날 만난 노인들은 이제 또다시 시작될 매서운 한파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모씨(82)도 "돈만 있으면 잠잘 곳이야 많은데 매달 나오는 연금 30만원만 가지고 어떻게 살 수 있겠냐"라며 "그나마 따뜻한 서울역 지하차도 쪽으로 가서 잠을 자려고 한다"고 밝혔다.
올해 겨울 평년보다 더 추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추위에 대비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을 위한 '한파 쉼터' 등 시설이나 대책이 모든 시간대를 아우를 수 있도록 좀 더 촘촘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낮이 가장 더운 여름과 달리 겨울엔 대부분의 시설이나 공간이 문을 닫는 밤이 가장 추운 시간대다.
취약계층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한파·무더위 쉼터'인 경로당을 방문해봤지만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종로구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이길성씨(83)는 "보통 오후 5~6시면 경로당이 문을 닫는데, 그때부터가 한창 추울 시간이다 보니 운영할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해줬으면 하는 것이 모든 노인의 바람"이라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가족이 있는 경우엔 밖으로 누가 나오려고 하겠냐. 친구도 가족도 없이 혼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쉼터가 그 역할을 좀 더 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에서는 11월에서 3월까지 구마다 24시간 동안 운영하는 한파 쉼터를 둘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에 현재 서울 시내에 67곳의 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사실상 큰 의미는 없다. 대부분 구청 내에 있는 고객민원실에 마련돼 잠시 앉았다가 갈 수 있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몇 년째 겨울이면 민원실 문을 열어두긴 하는데 잠을 자거나 할 수 있지는 않다 보니 방문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다"며 "체감하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안인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서울시가 지난겨울부터 운영 중인 냉난방 공유매장 '기후동행쉼터'도 홍보가 잘 안 돼 이용하는 이들이 적다. 현재 편의점과 신한은행, KT 대리점 등 505곳이 기후동행쉼터에 참여하고 있다. 쉼터로 선정된 서울 종로구의 한 KT 대리점 관계자는 "여름부터 쉼터로 운영하고는 있는데 쉼터 때문에 방문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쉼터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스티커가 붙어있어도 춥다는 이유로 매장에 선뜻 들어오기 꺼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도 기후동행쉼터나 한파 쉼터 등과 관련해 상황을 인지하고 지속해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후동행쉼터를 대부분의 시민이 낯설어하시는 것 같은데, 민간 기업들과의 협업 및 홍보 등을 통해 지속해서 확대해나가겠다"며 "또 한파 쉼터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점검에 나서고 추위에 앞서 분야별로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추위에 취약한 계층을 위해 현실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늦은 밤까지 한파 쉼터 운영이 되지 않는 것은 인력도 예산도 없기 때문인데, 민간 복지시설에 겨울의 일정 기간 위탁을 해서 맡기는 게 가장 빠른 해법이 될 것"이라면서도 "추울 때만 반짝 나오는 대책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주거 보장 차원에서 해결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날이 추운 한겨울에는 임시로 경로당 등의 쉼터 시설을 확대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단순히 쉼터를 제공하는 것만이 사회보장의 전부는 아니다"며 "국가에서 노인들과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공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