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쌀, 새로운 소비의 길을 찾는 여정

곽도연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장.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영화 속 대사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단순한 끼니가 아닌 평온한 일상을 묻는 안부의 인사다. 무난하고 무탈한 삶을 뜻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 즉 '아보하'라는 신조어와도 연결된다. 보통의 하루를 채우는 밥심에서 쌀은 필수 요소다.

쌀로 만든 전통 간식인 떡은 오랜 세월 우리 문화와 함께 해온 음식이며,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여전히 풍요와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아이 백일잔치에는 백설기, 수능에는 찹쌀떡, 이삿날에는 시루떡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하며 떡을 나눈다. 매년 11월11일은 '농업인의 날'이자 '가래떡 데이'로, 농업인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우리 곡물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가래떡을 나누는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급격한 산업화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쌀 소비량이 크게 감소했다. 지난 30년간 소비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4㎏에 그쳤다. 정부는 쌀 수급 안정을 위해 초과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한 대책으로 총 20만t 격리계획을 발표했다. 또 내년에 정부양곡 30만t을 사료용으로 특별처분해 재고 부담을 완화할 계획이다. 더불어 쌀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품질 중심의 다양한 생산체계로 전환하고, 재배면적의 축소와 쌀 가공식품의 신규 수요 창출을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을 모색 중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현재 쌀 수급 과잉을 해소하고, 밀가루 수요 일부를 쌀로 대체해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가루쌀을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정책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가루쌀은 우수한 가공 적합성을 통해 제면·제과·제빵 등 다양한 쌀 가공산업의 판로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또 다른 노력의 일환으로 쌀 수출 확대를 위한 연구개발이 강화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자포니카 장립종 쌀인 '아미쌀'을 당진시와의 협업으로 싱가포르와 캐나다, 네덜란드, 몽골 등 4개국에 58t 수출했다. 국립식량과학원에서는 새로운 자포니카 장립종 쌀도 수출 전용 품종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우리나라 쌀 수급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증가 추세를 반영해 인디카 장립종 쌀(길이가 길고 찰기가 없는 쌀)의 내수와 수출시장을 모두 공략하기 위한 연구를 내년부터 추진할 계획이다. 장립종 쌀의 국내 재배를 규모화하고, 신품종 개발을 통해 소비 통로를 확장시켜 나갈 것이다.

문화적 파급력을 통한 소비 창구도 주목해야 한다. K-팝의 인기를 시작으로, K-콘텐츠인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이후 한국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인기와 더불어 한국 음식에도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전통을 고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으로 쌀의 소비를 다각화할 수 있는 제품개발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트렌드를 반영한 현대적인 접근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면 쌀 소비 촉진의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쌀 한 톨을 얻기까지 농부의 손길이 88번이나 닿는다고 한다. 이러한 수많은 손길이 헛되지 않도록, 계절의 풍요와 더불어 보통의 일상도 깊이 무르익길 바란다.

곽도연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

세종중부취재본부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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