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훈기자
이달 들어 불과 엿새 만에 주요 시중은행의 달러예금이 1조6000억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에선 일부 투자자들이 관세부과 등 '강(强) 달러' 정책을 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에 베팅한 것이란 해석을 내놓는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6일 기준 달러화 예금 잔액은 618억11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말(605억6200만달러) 대비 2.06%(12억4900만달러) 증가한 수치다. 엿새 만에 1조6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달러로 전환된 것이다.
5대 은행의 외화예금 잔액은 ▲6월 532억6100만달러 ▲7월 573억4800만달러 ▲8월 631억4900만달러 ▲9월 636억9800만달러 등 지속해서 상승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1310~1340원대(종가 기준)로 내렸던 8~9월에는 달러예금 증가액이 60억달러에 달했다.
이런 흐름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던 지난달 하순 환율이 1380원대에 이르자 꺾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말 기준 달러예금 잔액은 전월 대비 4.92%(31억3600만달러) 줄어 5개월 만의 감소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불과 엿새 만에 달러예금 잔액은 상승세를 그렸다. 이달 1~5일 사이 원·달러 환율은 1370원대로 소폭 내려앉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된 6일엔 오후 3시30분 종가 기준 1396.20원까지 치솟은 바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지난 10월 한 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한 바 있는데, 이는 시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를 예상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달 들어 달러예금이 늘어난 것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과 이에 따른 환율 추가 상승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금융권에선 트럼프의 복귀로 강달러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국내적으론 관세 확대 등 보호주의적 무역기조를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부과로 미국 내 상품가격이 상승하면 인플레이션(물가상승) 효과가 발생하고, 이는 곧 금리 상승과 강달러로 연결된다. 특히나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무역분쟁이 확대돼 수출량이 줄게 되면 원화약세 현상이 뚜렷해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관세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이 유력하다는 심리가 환율을 1400원 안팎으로 밀어올렸다"면서 "이와 함께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상황인 만큼 환율은 추가 상승할 전망"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