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나영기자
서울 집값이 요즘에만 비싼 것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쓴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라는 책을 보면 300여년 전 한양 집값 앞에도 장사는 없었다. 양반은 과거 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 백성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한양으로 몰려왔다.
정조 시절, 임금을 지키는 어영청의 대장 윤태연은 방 10칸짜리 집을 사서 리모델링으로 30칸까지 쪼갠 후 세를 놓는 ‘쪽방 재테크’를 했다. 성균관 유생들은 두 명씩 조를 짜서 작은 방 하나를 구해 하숙하는 게 예삿일이었다. 애민정신의 대변자 정약용마저 유배 시절 두 아들에게 쓴 편지에 “너희를 한양에서 10리(4㎞) 안에 살게 하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인(in) 서울’에 대한 집착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욕망이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심리가 지배하는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수요·공급 그래프는 왜곡된다. 정부가 대출을 조이면서 서울 아파트 매물이 쌓이는데도 집주인들은 호가를 더 올리는 형편이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중개사무소에 연락해보면 ‘이제는 그 가격으로 살 수 없다’라는 대답만 듣기 일쑤”라는 글들이 눈에 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라는 올림픽파크포레온의 입주가 이달 말 시작되는데도 서울 전셋값은 꺾일 조짐이 없다.
매매든 전세든 서울 아파트 주인들이 가격을 안 내리고 버티는 것은 집값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2026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의 4분의 1로 떨어진다는 예고는 불패 믿음을 심어줬다. 새 아파트 품귀 현상은 신고가의 동력이 된다.
‘상고하저’도 학습했다. 현 정부 들어서 연초마다 특례보금자리, 신생아특례 같은 정책대출이 나왔다. 매년 상반기 자금이 풀려 집값 상승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다가 하반기가 되면 주춤해졌다. 내년에도 비슷한 기조가 계속된다면 당장 팔 이유가 없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실수요자들은 매매가가 다시 뛰기 전에 사라”고 추천한다. 이쯤되면 서울 집값이 다시 요동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볼 수 있다.
집값을 잡으려면 집을 더 짓는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1기 신도시 재건축, 그린벨트 해제 같은 대책을 하루가 멀다고 발표하는 중이다. 이것들이 공수표가 안 되려면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도 1기 신도시가 일정대로 진행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2027년부터 재건축 선도지구에서 2만~3만가구씩 이주수요가 쏟아질 텐데 국토부 계획처럼 영구임대주택 재건축으로 이 수요를 흡수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넓은 평수가 없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데다 기존 임대주택 거주자들은 갈 곳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린벨트를 풀어 수도권에 5만가구를 짓는 대책에도 세밀한 토지보상 협상안이 뒤따라야 한다. 보상절차와 토지 감정평가액 산정계획부터 빨리 나와야 ‘2029년 분양-2031년 입주’로 집값을 낮추겠다는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 4년 전에 발표한 3기 신도시 중에는 아직도 보상 협상이 안 된 곳이 있다. 구체적인 정책일수록 시장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약용은 아들 둘에게 “만약 한양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을 불린 후에 들어가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300여년이 지난 현재는 꿈도 못 꿀 일이 됐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노오력’해서 살 수 있길 바라는 서울 집값 수준은 지금도 딱 이 정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