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순기자
1985년 국내 1세대 피자전문점으로 문을 열어 4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온 한국피자헛이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가맹본부의 부당이득금 문제를 지적하며 일부 가맹점주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회사 운영도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면서다. 한국피자헛은 소비자들이 매장을 정상적으로 이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고, 소송 당사자들과 원만한 합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2심까지 잇달아 패소한 만큼 대법원 판결에 따라 수백억 원을 돌려줘야 할 수도 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국피자헛은 지난 4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회생법원 회생12부(오병희 부장판사)는 이날 한국피자헛에 대한 보전처분과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보전처분은 신청 회사가 자산을 처분해 특정 채권자에게만 변제하지 못하게 하는 조처다. 포괄적 금지명령은 반대로 채권자들이 기업회생 개시 전에 강제집행·가압류·경매 등으로 회사의 주요 자산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채권을 동결하는 처분이다. 이는 특정 채권자가 우선 변제받는 것을 막고 회생 계획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조처다.
한국피자헛 가맹본부는 "소송에 참여한 점주들이 지난달 4일부터 가맹본부의 은행 계좌에 압류와 추심 조치를 진행해 종업원 급여 지급과 협력업체 납품 대금 지급, 주요 원재료 공급 등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며 "이번 회생 절차 개시 신청은 계좌 동결을 해제해 회사 현금 흐름을 정상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국피자헛은 자율구조조정지원(ARS) 프로그램도 함께 신청했다. 이는 회생절차 개시를 일정 기간 보류하고 그동안 기업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이행하면서 채권자들과 원만한 조정을 협의하는 제도다.
양측 간 갈등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사가 점주들 동의 없이 원·부재료 가격에 차액을 붙여 납품했다는 '차액가맹금'이 갈등의 불씨였다. 차액가맹금은 가맹본부가 가맹점에 공급하는 필수품목에 붙이는 일종의 마진이다. 같은 해 4월 가맹사업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가맹본부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하는 정보공개서에 직전 사업연도의 가맹점당 평균 차액가맹금 지급 금액과 직전 사업연도의 가맹점당 매출액 대비 차액가맹금 지급 금액의 비율을 의무 기재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차액가맹금을 인지하지 못했던 한국피자헛의 일부 가맹점주는 2020년 본부가 공급하는 필수품목에 마진을 붙인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며 차액가맹금 징수를 부당이익으로 규정하고 소송에 나섰다.
이전까지 차액가맹금은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관행처럼 여겨졌다. 반면 소송에 참여한 가맹점주들은 매달 본부에 고정 수수료와 광고비 명목의 분담금을 지급하는데, 원자재에 추가로 마진을 붙이는 것은 중복 수수료라는 입장이다. 한국피자헛이 공정위에 등록한 정보공개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가맹점주들은 매달 순매출액의 6%와 5%씩을 고정 수수료(로열티)와 광고분담금 명목으로 본부에 각각 납부했다.
이 소송과 관련해 2022년 6월 열린 1심에서 서울중앙지법은 "한국피자헛은 가맹점주들에게 차액가맹금 상당 부당이득 75억여만원을 반환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가맹본부가 차액가맹금을 부과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이를 징수하기 위한 사전 합의나 근거가 없었다는 가맹점주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어 올해 9월 2심에서도 법원은 가맹점주의 손을 들어줬고, 반환금은 210억원으로 늘었다. 1심에서는 2019~2020년분 차액가맹금에 대해서만 반환하라고 했으나 2심에서는 2016~2022년분이 모두 반영된 결과다.
한국피자헛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회사 측은 "한국피자헛의 입장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대법원 상고를 통해 다시 한번 법률적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밝혔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한국피자헛이 가맹점주들과 강제집행 문제를 원만히 합의하고자 ARS 프로그램을 신청했다"며 "대법원 판결이 있을 때까지 점주들과 절차 합의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피자헛을 둘러싼 대법원 판결은 그동안 차액가맹금 징수를 관행처럼 여겨온 국내 외식사업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맹본부가)부 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나면 다른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이 문제를 둘러싼 가맹점주와의 분쟁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자헛은 미국에서 라이선스를 받아 1985년 서울 이태원에 1호점을 연 뒤 1991년 6월 한국피자헛을 설립해 본격적인 식음료 사업에 나섰다. 설립 당시 펩시코, 페라마코 인터내셔날, 내국인 등 여러 주주가 참여했다. 2009년까지 국내 피자 업계 1위를 달렸으나 이후 피자 프랜차이즈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냉동 피자 등 간편식이 확대되면서 사업은 내리막에 접어들었다. 여러 차례 지분 변동을 거쳐 현재 투자회사 오차드원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회사는 2021년까지 4억4295만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최근 2년간 적자를 기록했다. 2022년 영업손실은 2억5612만원이었고, 지난해에는 적자 규모가 45억2240만원으로 1년 만에 20배 넘게 증가했다. 지난해 매출도 1000억원 아래로 떨어져 869억원에 그쳤다. 이는 2019년과 비교하면 25% 감소한 수치다. 가맹점 개수는 지난해 말 기준 297개로 2021년 340개에서 2년 만에 40개 넘게 줄었다.
지난해 기준 한국피자헛의 전체 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자본총계는 96억4597만원이었다. 회사 설립 시 납입한 자본금 6억300만원보다는 크지만 2020년 257억1600만원과 비교하면 62%나 감소했다. 지난해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약 38억원인 데 반해 유동부채도 122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경영 상황이 좋지 못한 한국피자헛이 200억원이 넘는 반환금 규모에 부담을 느껴 대법원 판단까지 시간 벌기에 나섰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다만 한국피자헛 측은 "피자헛 비즈니스의 근본적인 운영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소비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피자헛을 이용할 수 있다"며 "2심 판결 이후 일부 원고 측의 강제집행으로 계좌가 동결되면서 발생한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