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정신장애 있는 딸만 참여한 압수수색 위법'…'참여능력 필요' 첫 판단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 영장 집행의 참여자는 압수수색절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 즉 '참여능력'을 갖춰야 하며 이를 갖추지 않은 사람만 참여한 상태에서 집행된 압수수색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주거주(住居主) 등 형식적 참여자가 참여했더라도 그가 참여능력이 없는 자라면 영장집행절차의 적정성을 담보함으로써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강제처분을 받는 당사자를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형사소송법의 취지에 반한다는 이유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및 대마)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A씨의 대마 보관 혐의를 유죄로 인정,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의 유죄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이 주거지 등에서 압수색영장을 집행할 때 주거주 등이나 이웃 등을 참여하도록 한 것은 주거의 자유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 같은 기본권 보호의 필요성이 특히 요구되는 장소에 관해 밀접한 이해관계를 갖는 사람을 참여시켜 영장집행절차의 적정성을 담보함으로써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강제처분을 받는 당사자를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러한 점에 비춰 보면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바에 따라 압수색영장의 집행에 참여하는 주거주 등 또는 이웃 등은 최소한 압수수색절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참여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에 참여하는 주거주 등 또는 이웃 등이 참여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영장의 집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법·부당한 처분이나 행위로부터 당사자를 보호하고 영장집행절차의 적정성을 담보하려는 형사소송법의 입법 취지나 기본권 보호·적법절차·영장주의 등 헌법적 요청을 실효적으로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이러한 법리는,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피의자가 동시에 주거주 등인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당사자의 참여권'과 '책임자의 참여'는 그 취지나 목적, 보호법익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피의자가 주거주 등인 주거지 등에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는 경우 피의자에게 참여능력이 없다면 그 피의자만 참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참여능력이 없는 피의자만 참여했다면 그 압수수색은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위법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판부는 이번 사안에 대해 "A씨 딸의 압수수색 절차 참여능력이 부족했다고 볼 여지가 있고 수사기관도 그의 정신과 치료 내역 등으로 이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며 "그럼에도 A씨 딸만 참여시킨 압수수색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다면 이 사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들은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에 해당해 증거능력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볼 여지가 많다"며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 대마를 포함하여 위법한 이 사건 압수수색을 통해 수집된 증거를 근거로 쟁점 공소사실(대마 보관)을 유죄로 판단한 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는바,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형사소송법 제123조에서 정한 참여자의 참여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A씨는 2019년 5월 28일 서울 구로구 자신의 주거지 안방 금고에 대마 약 0.62g을 보관한 혐의(대마 보관)와 2019년 3월~6월 중국이나 서울, 경기 등 불상지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인 메트암페타민을 투약한 혐의(향정)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은 A씨의 20대 딸 B씨의 마약류 투약 혐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주거지를 수색하던 중 금고 속 대마를 발견하고 A씨를 기소했다. 압수수색 현장에는 A씨 딸만 참여했다.

재판에선 이 압수수색의 적법성이 쟁점이 됐다.

애초 수사기관은 2019년 3월 B씨가 다니던 병원 담당 의사로부터 B씨가 필로폰을 투약했다는 취지로 얘기한 사실이 있음을 확인하고 같은 해 5월 9일 B씨를 필로폰 투약 피의자로 한 체포영장과 거주지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서 발부받았다.

그런데 같은 달 28일 B씨는 사우나에서 소란을 부리며 재물을 손괴하는 사고를 저질렀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과 시비를 벌이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B씨를 체포한 경찰은 앞서 발부받아 놓은 체포영장을 집행한 뒤 같은 날 B씨의 거주지로 이동해 역시 미리 받아놓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안방 금고에 보관돼 있던 대마 약 0.62g과 스포이트, 깔때기 등 마약 관련 증거물을 발견해 압수했다.

B씨의 부친인 A씨는 수사 과정에서 딸 B씨와 함께 사용한 금고로,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서랍장 형태의 금고였던 만큼 자신의 동거인이나 형사 등 제3의 인물이 금고에 대마를 넣었을 가능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확보한 증거들을 토대로 A씨를 대마 보관 혐의로 기소했다.

1심 법원은 A씨의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기각 판결했다. 수사기관이 A씨의 모발에서 나온 마약 양성반응 감정 결과를 토대로 투약 가능한 기간을 역으로 추산하고, A씨의 휴대전화 발신지 기록 등을 토대로 공소장에 막연하게 투약 장소를 기재했을 뿐 범행 장소나 방법 등이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소제기 자체가 무효라는 이유였다.

반면 재판부는 A씨의 대마 보관 혐의를 유죄로 인정,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과정이 위법하기 때문에, A씨의 대마 보관 혐의 유죄의 증거들을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봤다.

B씨가 2016년 1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정신병적 증세를 이유로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 약 13회에 걸쳐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던 전력이 있다는 점과 2017년 심리평가 결과 '전체지능 57, 사회성숙연령 11세 수준'으로 평가받은 결과 등에 비춰 압수수색 절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참여능력이 없다고 봤다.

형사소송법 제123조(영장의 집행과 책임자의 참여) 2항은 '타인의 주거, 간수자 있는 가옥, 건조물, 항공기 또는 선박·차량 안에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할 때에는 주거주, 간수자 또는 이에 준하는 사람을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같은 조 3항은 '2항의 사람을 참여하게 하지 못할 때에는 이웃 사람 또는 지방공공단체의 직원을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고 정했다.

그리고 이 같은 법원의 압수수색 관련 규정은 형사소송법 제219조(준용규정)에 따라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압수, 수색, 검증에 준용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주거주 등이 참여할 때 압수수색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즉 참여능력이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 선례가 없어 견해 대립이 가능한 영역이었다"며 "대법원은 이 사건을 통해 최초로 참여능력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고 이번 판결의 의의를 밝혔다.

이어 "형식적으로 주거주 등이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실질적 절차보장이 어렵기 때문에 압수수색절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참여능력이 필요하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A씨의 향정 혐의에 대한 부분은 검사가 상고하지 않아 2심의 공소기각 판결이 분리·확정됐다.

사회부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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