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 용어]“나는 너랑 ‘급’이 달라”…파노플리 효과

특정 집단과 동일시하는 환상 효과
한국사회 만연한 등급화, 서열화 풍조
학벌·직업·결혼시장 '급 나누기'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란 특정 제품을 구매하거나 소비하면, 자신을 그 제품의 소비자 집단과 동일시하는 환상을 갖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한 온라인 가격비교사이트가 공개한 ‘2024 러닝화 계급도’ 콘텐츠가 화제다. 이 러닝화 계급도는 러닝 붐으로 러닝화의 품질과 기능, 가격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가운데 누리꾼의 이목을 끌었다. 이 계급도는 최상위의 '월드클래스'부터 '국가대표' '지역대표' '동네대표' ‘마실용’ 그리고 맨 아래쪽에는 ‘입문용’ 순으로 총 여섯 계급에 해당하는 러닝화들을 나열해 추천하고 있다.

수험생의 대학 선택에 도움을 준다는 취지로 올린 한 유튜브 영상. 같은 라인에 있는 대학은 같은 급으로 생각하라고 주장한다. [사진출처=유튜브 캡처]

업체는 등급 기준은 밝히지 않았지만, 가격과 성능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계급도가 “하다못해 신발마저 계급이 있나” 등의 논란을 일으키면서 ‘파노플리 효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파노플리 효과는 1980년대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밝힌 개념이다. 파노플리(Panoplie)는 프랑스어로 ‘집합’, ‘세트(set)’란 뜻이다. 원래는 기사의 갑옷과 투구 한 세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소비 중심의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특정 집단과 연대감을 과시하기 위해 소비하는 제품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보드리야르는 “상류층이 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사람들은 고가 상품을 구매한다”고 분석했다. 즉 구매한 물건을 통해 특정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거나, 신분 상승을 선망하는 인간의 사회적 욕구와 연관된 소비 심리를 설명한다. 의사 놀이를 하는 어린이가 마치 의사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거나,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을 사면 부자 집단에 들어간 것처럼 자신감이 생기는 효과가 대표적인 사례다.

2024 러닝화 계급도. 월드클래스부터 입문용으로 서열화해 추천한 러닝화들을 나열하고 있다. [사진출처=다나와]

명품이나 고가의 제품 구매에 대한 소비 심리를 설명하는 이론에는 흔히 파노플리 효과와 베블런 효과 두 가지가 언급된다. 둘의 개념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파노플리 효과는 남과 ‘동일’해 보이려는 욕구지만, 베블런 효과는 남과 ‘구별’되려는 욕구다. 베블런 효과는 자신의 남다른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려는 소비 행위로, 명품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현대 사회는 계급을 명문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소수의 상류계급에 속해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길 원한다. 앞서 ‘2024 러닝화 계급도’는 최상위 계급의 러닝화를 신으면, 자신이 엘리트 선수가 된 듯한 기분이 들게끔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상위 계급에 속하고 싶은 욕구와 함께 남과 달라야 한다는 경쟁 심리마저 부추긴다.

2023 이상적 배우자의 모습 [사진출처=듀오]

이 같은 러닝화 급 나누기는 한국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에는 이미 ‘등급화·서열화’ 풍조가 만연하다. 여러 요인에 따라 등급과 서열이 생기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대학 입시 때부터 사회에 나와 겪는 학벌, 회사와 직종에 대한 직업적 서열 등을 서열화해 만든 표가 온라인에 공유되는 것이 그 예다. 결혼정보업체들은 사람을 외모, 나이, 직업, 재산 등으로 철저히 가린 뒤 급을 나눠 만남을 주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론 ‘재미로 보는 서열표’라고 하지만, 본 사람들의 반응은 썩 유쾌하지 않다.

정치부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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