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나영기자
국토교통부가 민간 전·월세 시장에 기업들을 대거 유인해 '100가구 이상 대단지, 2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는 민간임대주택을 2035년까지 10만 가구 이상 만들겠다고 밝혔다.
임대료 상승 규제를 완화하고, 취득세와 재산세 감면 같은 세제 혜택을 통해 민간임대주택 시장에 기업들을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다. 국토부가 다음 달 중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향후 새로운 유형의 민간임대주택이 대거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서민·중산층·미래세대 주거 안정을 위한 새로운 임대주택 공급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비등록·개인이 주도한 민간임대주택시장에서는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이 부족했다"며 "앞으로는 리츠(REITs·부동산 간접투자기구)를 포함한 법인이 대규모로 장기간 임대주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22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임대주택시장은 민간임대 78.5%(658만 가구)와 공공임대 21.5%(186만가구)로 구성돼 있다. 민간임대 중에서도 비등록 임대 비중이 61.8%(514만가구)로, 등록임대(약 17%·144만 가구)보다 훨씬 높다. 등록임대 안에서 개인 물량 비중은 63%에 달하는 것에 비해 100가구 이상 보유한 법인 물량은 32%에 그쳤다.
'신(新)유형 민간장기임대주택' 유형은 '자율형' '준자율형' '지원형' 세 가지로 나뉜다. 정부로부터 규제에서 자유롭고 지원을 많이 받을수록 임대료 상승 폭이 제한되고, 의무 이행안이 늘어난다. 반대로 규제를 많이 받고 지원이 적을수록 임대료를 자유롭게 올릴 수 있다.
먼저 '자율형' 사업자는 규제 면제가 없고 지원도 안 받는 대신, 임대료는 재량껏 올릴 수 있다. 자율형을 선택한 민간임대주택 사업자는 임차인이 입주한 후 첫 4년 동안만 주택임대차보호법(2+2년·임대료상승률 5%)을 적용받게 된다. 이후부터는 자유롭게 전·월세 임대료를 인상할 수 있다.
'준자율형' 사업자는 정부로부터 주택기금 융자를 받을 수 있는 대신, 임차인이 전·월세로 사는 기간 내내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적용해줘야 한다. '지원형' 사업자는 주택기금 융자와 더불어 공공택지 할인공급까지 받을 수 있다. 대신 공적 의무를 '준자율형'보다 더 져야 한다. 임차인 거주 기간에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따라야 하는 것에 더해, 초기임대료(시세 95%) 제한을 받고 무주택자에게 우선 임대해야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율형 임대 사업자는 4년만 지나면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릴 수 있다"며 "하지만 준자율형과 지원형 사업자는 2년마다 한 번씩 임대료를 5% 이내로만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세 유형 모두 '물가상승률과 연동한 임대료 상승률'과 '임차인 변경 시 임대료 상승률 제한' 규제는 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한 장기임대주택을 건설할 대 용적률을 국토계획법 시행령 상한의 1.2배까지 올려주는 혜택도 준다.
이렇게 20년 이상 살 수 있는 장기임대주택이 등장하면, 임대사업자의 사업계획에 따라 청년·신혼부부·노인을 위한 특화 서비스도 결합할 수 있을 거라는 게 국토부 예상이다. 예를 들어 사업자들이 이 장기임대주택이 노인복지주택 같은 '실버 스테이'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원형' 민간임대건물이 실버 스테이로 운영되면, 입주비를 인근의 비슷한 시설 시세의 95% 이내로 정하게 할 예정이다.
세제 지원 카드도 꺼냈다. 국토부 관계자는 " '자율형' '준자율형' '지원형' 사업자 모두 임대의무기간인 20년과 임대료 증액 기준을 잘 지키는 사업자에게는 취득세 중과(12%), 종합부동산세 합산, 법인세 추가 과세(20%)를 배제한다"고 설명했다. '준자율형' '지원형' 사업자는 취득세와 재산세 감면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20년 이상 장기임대 운영을 하려면 무엇보다 자금조달이 원활해야 한다"며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자율형' '준자율형' '지원형' 사업자 전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주택기금 융자는 '준자율형'과 '지원형'에만 해당한다. 건설이냐 매입이냐, 가구당 면적이 얼마냐에 따라 9000만원부터 1억4000만원까지 빌려준다. 금리는 2.0~3.0% 수준이다.
민간임대주택을 지을 땅을 마련하기도 쉬워진다. 도심 민간부지 내 개인 사유지의 경우, 땅 주인이 민간임대주택 건설을 위해 부지를 매각할 때 양도세를 10% 감면해줘 땅값을 낮추도록 했다. 법인 소유지의 경우에는 매각 시 법인세 10%포인트 추가 과세를 안 하기로 했다. '지원형'에는 도심 내 폐교 같은 유휴 국공유지를 수의계약으로 50년까지 임대하는 방안도 내놨다.
민간임대주택 사업 참여자 범위는 이전보다 넓어진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 리츠 주식을 임차인에게 우선 제공해 임차인과 수익을 공유하고, 임대주택 리츠 간접투자 시장을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보험사를 포함한 장기투자성 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토대도 마련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그동안 보험사는 장기투자 의향이 있었으나 불확실성이 커서 진입을 망설이는 상황이라 법령 해석을 명확하게 했다"며 '보험사가 장기임대주택을 보유할 때,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 평가지표인 지급여력비율 위험 계수를 기존 25%에서 20% 낮추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전했다.
법인 민간임대주택 사업자 간 임대주택을 거래할 때 규제도 푼다. 5년 이상 민간임대주택을 운영한 후 다른 사업자에게 넘길 때 양수 사업자가 임대 운영을 지속한다면, 양도 사업자는 종래에 받은 세제 혜택을 유지할 수 있다. 양수 사업자 역시 취득세를 안 내도 된다.
한편 국토부는 노후공공청사 복합개발을 통해 2035년까지 도심에 임대주택 5만호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사업 대상지를 직접 발굴하거나, 지자체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해 지지부진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는 국토부가 주관하는 '공공시설 복합개발 추진 협의회'가 만들어진다. 협의회에서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지자체, 사업시행자가 직접 참여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30년 이상 노후화된 공공청사나 폐교 예정 부지에 임대주택을 세우는 복합개발 검토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이번 대책이 임대주택 공급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청년, 신혼부부, 고령자를 포함한 다양한 수요자가 원하는 곳에 적정수준의 임대료로 이사 걱정, 전세 사기 걱정 없이 원하는 기간만큼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양질의 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와 관계부처와 협의해 법 개정과 사업지 발굴 같은 후속 조치를 이행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