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쓰의 재발견]④밤에만 문 여는 '도쿄 빵집'

日 푸드 업싸이클링 현장 르포
밤의빵집, 전국 제과점 남은 빵 재판매
도쿄리버사이드 증류소…사케주정 진가공
4년간 21t 규모 부산물 재활용

도쿄 밤의빵집에서 가두 판매에 활용하는 차량과 안내문[사진출처=밤의빵집 홈페이지]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의 다마치역 앞에는 매주 수·목요일 퇴근 무렵 가판 형태의 제과점이 문을 연다. 노숙인의 자립을 돕기 위해 1991년 영국에서 창간한 월간 잡지 빅이슈의 일본 법인에서 운영하는 '밤의빵집'이다. 빵집을 표방하고 있지만 구성은 단출하다. 소형 승합차와 제품을 진열하는 판매대, 분필로 그려낸 안내판이 전부다. 국내 일부 지하철역에서 빵을 구우며 풍기는 고소한 냄새도 없다. 그럼에도 귀가하는 직장인이나 학생, 1인 가구, 주부 등 행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낮 최고기온이 37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초. 오후 5시30분께 찾아간 밤의빵집에서는 크루아상과 바게트, 호밀빵, 크로켓, 식빵, 머핀 등 매대에 올린 다양한 종류의 빵들이 1시간도 되지 않아 대부분 팔려나갔다. 판매 직원 3명은 냉장 보관한 제품을 추가로 진열하고, 고객을 응대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남은 빵 연간 6만개 가두판매…폐기 음식 통한 새로운 일자리

밤의빵집은 일본 전역의 제과점에서 당일 오전 갓구워 팔다 남은 제품을 한데 모아 판매대에 올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도쿄뿐 아니라 홋카이도와 교토, 사이타마, 시즈오카 등 다양한 지역의 28개 중·소형 제과점으로부터 빵을 받아온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공들여 만든 빵이 팔리지 못해 버려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고, 소비자는 거주지 인근에서 각 지역의 특색 있는 빵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자칫 음식물 쓰레기로 전락할 수 있는 상품이 다시 유통될 수 있도록 돕는 일본식 푸드 업사이클링의 일환이다. 현재 다마치역뿐 아니라 구라자카역과 오테마치 등 도쿄 내 지하철역 인근 3곳에서 요일과 개장 시간을 달리해 하루 2~3시간가량 밤의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도쿄 다마치역 인근에 문을 연 밤의빵집에서 행인들이 빵을 둘러보고 있다.

도쿄 밤의빵집에서 판매 직원이 제품을 진열하고 있다.[사진출처=밤의빵집 홈페이지]

빅이슈 재팬 소속으로 밤의빵집 운영을 담당하는 미츠에다 모에미씨는 "빵을 만드는 이들은 식품 손실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번 어느 지역의 어떤 빵을 만날지 기대하고 고르는 재미가 있다"면서 "밤의빵집 운영을 통해 버려질 처지에 놓인 빵을 연간 6만개가량 다시 유통해 식품 손실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빅이슈 재팬에서 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 것은 '세계 식량의날'이자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10월16일부터다. 음식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로 출발했다. 노숙인과 미혼모 등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공수하고, 판매하는 등의 일을 맡겨 자립을 돕기 위한 취지였다.

지역 제과점으로부터 반값에 입고하는 빵을 정상가에 판매한 뒤 차량 유지비 등 소정의 운영비를 제외하고 수익금을 직원들을 위해 쓰고 있다. 미츠에다씨는 "밤의빵집 운영을 위해 부득이하게 제품을 정상가보다 싸게 들여오고 있지만, 제빵사의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가격에는 할인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사케 주정·재고 맥주에 새 생명…소나무 3.7만그루 심은 효과

밤의빵집이 수행하는 푸드업사이클링이 이미 제조된 완성품의 폐기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라면, 대부분 버려졌던 부산물을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식품을 창조하는 모델도 일본에 있다. 도쿄도 다이토구 쿠라마에역 인근에 위치한 주류 관련 스타트업 '도쿄 리버사이드 디스틸러리(증류소)'다.

이 증류소는 일본식 청주를 뜻하는 사케를 제조하고 남은 찌꺼기를 진으로 재생산해 제품화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설립자인 오노 치카라 대표는 "사케를 짜내고 남은 주정(사케가스)에는 일정량의 효소와 알코올 성분이 남아 있다"며 "이를 물로 희석해 두 차례 재발효한 원액 형태의 '베이스 스피릿'을 추출한 뒤 맛과 향을 배합해 진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노 치카라 도쿄 리버사이드 증류소 대표가 사케 주정으로 크래프트진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재고로 쌓인 맥주를 활용하거나 카카오 껍질, 커피 찌꺼기, 야채 줄기 등 기존에는 폐기했던 원료를 사용해 진을 생산하기도 한다. 사케 주정으로 만든 진은 '라스트 시리즈', 맥주를 재활용한 진은 '리바이브 시리즈', 과일이나 야채 부산물을 활용한 진은 '에티크 시리즈'로 분류해 증류소 안에서 운영하는 바(BAR)와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각 시리즈의 대표 진을 시음해보니 라스트 시리즈에서는 로즈메리향과 가벼움, 산뜻함이 느껴졌다. 리바이브 시리즈 진은 알코올 도수 40도(%)의 묵직함이 특징으로 색상도 맥주 빛을 띠고 있었다. 에티크 시리즈 중 카카오 껍질을 원료로 만든 진에는 은은한 초콜릿 향이 배어있었다.

영국에서 마케팅 관련 기업을 운영하고 컨설팅 전문가로 일했던 오노 대표는 주류 관련 편집숍을 운영하던 일본 지인과 우연한 계기로 사케를 만들고 남은 주정을 활용할 방법을 논의하다가 크래프트 진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도출했다. 이를 사업화하기 위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고, 당초 목표했던 300만엔(약 2700만원)을 훌쩍 넘는 1300만엔(약 1억2000만원)을 모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사케 주정으로 진을 만드는 데 성공하자 글로벌 맥주 브랜드 버드와이저에서 신규 사업 담당으로 일하던 오노 대표의 지인이 팔다 남은 맥주를 진으로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해 외연을 확장했다고 한다. 오노 대표는 "맥주는 유통기한 문제로 재고 부담이 있다"며 "이를 진으로 재생산하면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오래 보관하고 판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 리버사이드 증류소가 자체 생산하는 진이 건물 입구에 진열돼 있다.

도쿄 리버사이드 증류소가 4년간 개발하고 생산한 진의 종류는 60개에 달한다. 버려지는 재료를 활용해 빚은 술이라는 선입견보다는 신선한 아이디어 제품이라는 평가 속에 책과 유튜브 등에도 소개되면서 일본과 해외 관광객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사업 첫해와 비교해 제품 판매량도 10배가량 늘었다. 제품력으로도 인정받아 전 세계 1000개의 주류 제조사가 참가하는 국제 와인&스피릿 대회(IWSC)에서 2021년 진 부문 상위 9개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고, 올해는 최상위 등급인 '골드'를 수상했다.

도쿄 리버사이드 증류소가 운영하는 바에서 직원들이 사케 주정을 활용해 생산한 진으로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가장 큰 성취는 음식물 쓰레기가 될 뻔한 소재에 생명을 불어넣어 친환경에 일조한 것이다. 도쿄 리버사이드 증류소에 따르면 4년간 진의 재료로 재활용한 사케 주정의 양은 약 21t으로 이산화탄소 5.2t을 감축했다. 어린 소나무 3만7440그루를 심은 것과 맞먹는 효과다. 오노 대표는 "버려지는 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만들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눈여겨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소비자들의 마음가짐에 변화를 일으키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유통경제부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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