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한예주기자
이정윤기자
국내 주요 그룹의 긴축경영이 재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일부 그룹 계열사가 임원들 주 6일 근무를 부활한 데 이어 호실적에도 비용 절감을 강도 높게 추진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비용 절감의 최대 타깃은 해외 출장이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네트워크 등 일부 사업부 임원들에게 해외 출장 시 비즈니스 대신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고 숙소도 평사원과 같은 등급으로 제공하도록 했다. SK그룹 배터리 계열사인 SK온 역시 임원 출장 시 이코노미석을 예약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LS그룹도 올 상반기부터 사장급 이상은 1등석에서 비즈니스로, 임원은 비즈니스에서 이코노미 이용을 권고하고 있다.
전기차 캐즘(성장 산업의 일시적 수요 정체) 영향을 받고 있는 SK온을 제외한 삼성전자, LS는 실적 호조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적자에 시달렸지만 올 상반기엔 영업이익이 10조4439억원에 이를 정도로 뚜렷한 회복세를 나타냈다. LS 역시 올해 전력 관련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선, 일렉트릭을 중심으로 호실적을 기록 중이다. LS의 올 상반기 매출은 13조3593억원, 영업이익은 6180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의 경우 글로벌 주요 통신사들의 5G 통신장비 투자가 마무리되면서 지난해부터 매출이 감소해 인력과 비용 절감 필요성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IT 업계도 비용 줄이기에 동참하고 있다. 네이버는 해외 출장 시 항공권과 호텔 숙박 예약을 위해 기본적으로 한 달 전 신청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해외 출장 시일이 촉박한 때 항공권과 숙박권 확보에 애로사항이 등장할 수 있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국 일정이 다가올수록 이들의 가격이 비싸지는 것도 이런 원칙을 마련에 영향을 줬다는 후문이다.
카카오도 해외 출장을 위해 항공기에 탑승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이코노미 클래스 탑승을 사내 규정으로 두고 있다. 급지에 따라 호텔 숙박을 위한 지원을 차등하고 있다. 다만 출장 지역이 물가가 너무 높은 지역인 경우 사유를 적으면 인정해준다.
출장뿐 아니라 그동안 골프 예약도 제약이 많아졌다는 평가다. LS 일부 계열사는 골프 회원권을 회수하는 대신 필요할 때 예약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 역시 임원 골프 회원권을 대부분 거둬들인 상태다. SK그룹도 임원 법인카드의 한도를 50~70% 줄이고 골프 회원권을 대거 회수해 매각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로 올해 역대 최대실적을 구가하고 있는 SK하이닉스 역시 지난해 업무추진비를 감축한 이후 회복하지 않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임원·팀장의 복리후생비와 활동비, 업무추진비 등을 예산의 30~50% 삭감한 바 있다.
호실적에도 비용 절감을 외치는 건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 기후 위기 등 산업의 변화 속도를 올리는 외부 요인들이 산재해 있는 데다 세계 곳곳에서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면서 앞날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는 기업들조차 위기의식을 가질 정도로 글로벌 산업 전환 속도가 빠르다"며 "특히 올해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지정학적 리스크나 글로벌 산업계 판도가 변할 수 있어 미리 ‘군살’을 빼고 빠른 대응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