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다연기자
지난 3일 찾은 서울 관악구의 한 오피스텔. 층마다 복도를 살펴보니 생수와 쓰레기, 상자 등 각종 개인 물품들이 놓여있었다. 문 앞을 가로막은 큰 짐 사이로는 성인 한 명만이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비좁았다. 문 앞에는 '본인 호실 내로 적치한 물건을 이동해달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청년안심주택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날 만난 심모씨(25)는 "여기 건물 복도에 쌓인 물건들 때문에 소방서에서까지 나왔다는 얘기를 최근에만 벌써 두 번째 들었다"며 "관리실에서도 공지를 계속 하는데도 잘 치워지지 않는 상황이라 불편하다"고 전했다. 관리실에서도 "민원이 계속 들어와서 해당 호실을 방문해서 짐을 정리해달라고 하면 끄떡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관리하는 입장에서 강제하기도 어렵고 참 난처하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의 복도에 쌓인 적치물로 인한 주민 불편과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원룸 등 집 안의 수납공간이 부족한 경우에 짐을 두는 공간으로 복도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소방 관계자는 "오피스텔 등 복도 적치물과 관련된 신고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며 "현지 지도를 통해 민원을 해결하는 편이지만 지도를 여러 번 받는 경우에는 소방법에 따라 과태료 부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용 복도에 짐을 적치해두는 것은 불법 행위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16조에서는 '피난시설, 방화구획 및 방화시설의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적발 시에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복도·통로 폭이 2인 이상 피난이 가능한 경우나 일시적 보관 물품으로 즉시 이동이 가능한 경우 등에는 과태료 부과 예외 사항으로 적용받을 수 있다. 과태료는 내지 않지만 적치물 자체를 쌓아두는 행위 자체는 위법이다.
또 다른 아파트에서도 자전거나 쓰레기 등 적치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 동작구의 복도식 아파트에 거주하는 강모씨(61)는 "매주 쓰레기 버리는 날이 정해져 있는데 여름에는 일주일간 집에 방치해두면 냄새랑 벌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꺼내두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복도의 적치물이 위급상황에서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짐 적치는 소방대원의 진입과 주민 대피에 방해가 된다는 점에서 당연히 해결이 필요한 문제"라며 "특히 화재 등의 상황에서 적치물 자체가 가연물이 되어 화재를 악화시키거나, 불이 붙어 대피해야 할 통로를 막아버리는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소방에서 점검하고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 차원에서 위험성에 대해 인식을 하고 예방과 대비를 충분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에서는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수납공간 부족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년안심주택에서 거주하는 A씨(29)는 "원룸이 거의 5평도 안 되니까 꼭 필요한 물건도 둘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며 "물이나 부피 큰 물건들은 종종 복도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가지고 와서 사용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시민들도 복도나 계단에 짐을 두면 안 된다는 건 사실 다 인식하고 있지만, 집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기 때문에 고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제의 본질적 해결책은 집의 수납공간을 늘리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주거공간에 수납공간을 확보하는 정책이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