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한국화로 그려낸 삶의 절정, '푸르른 날'

학고재 김선두 개인전 '푸르른 날'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주제 의식 반영
현대적 감각의 한국화, 독창적 작품 세계 구축

한국화는 그동안 대중의 인식 속에 전통 회화, 과거의 그림으로 각인돼왔다. 김선두 작가는 현대적 감각으로 한국화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이어왔다. 그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에서 개인전을 진행한다.

김선두, 낮별-옥수수 [사진제공 = 학고재]

"전통적 기법에 내용은 동시대 것을 접목하려 노력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보름달이 뜬 밤 풍경을 묘사한 '밤길'(On the Way in Midnight), 옥수수가 시선을 사로잡는 '낮별', '지지 않는 꽃' 등 자연을 담은 연작과 시대를 대표하는 운동선수, 시인을 그린 '아름다운 시절' 등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 36점을 소개한다.

전시 주제는 서정주 시 ‘푸르른 날’에서 따온 것으로,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낡은 방식으로 새롭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지 중에서도 두텁고 촘촘한 장지에 분채를 물, 아교에 개어 여러 번 쌓아 올리는 김 작가의 작업은 투명하면서도 깊은 색을 뿜어낸다. 튼튼한 장지가 고운 분채를 깊게 머금어 곱게 발색하는 그의 '장지화'는 일본이나 중국의 채색화에는 없는 독자적 화풍이다.

김선두. On the Way in Midnight [사진제공 = 학고재]

그래서일까. 둥근 보름달 아래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걸어가는 이를 주제로 한 '밤길' 연작에서는 푸르고도 푸른 산과 하늘 위, 쏟아지는 별들과 큼지막한 흰 달의 대비가 더욱 선명하다. 그 빛은 작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을 고향 선배이자 작가 이청준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이청준 작가의 산문 '눈길'을 떠올리며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가로 8m 대작 '싱그러운 폭죽'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품이다. 작가는 꽃이 피는 순간을 보고 '땅이 쏘아 올리는 폭죽'을 떠올렸다고 한다. 꽃이 만개하며 꽃가루가 날리는 모습을 폭죽이 터지는 찰나의 순간으로 묘사한 작품은 그 절정이 지나고 나면 이내 소멸에 이르고, 공허해지는 자연의 이치를 담담하게 전한다.

김선두, '아름다운 시절-김수영' 2021, 장지에 먹, 분채. [사진제공 = 학고재]

인물의 찬란한 순간을 포착한 초상화 연작 '아름다운 시절'은 그들의 일정이 작품 하단에 적혔다 지워졌다 흔적으로 남아있어 눈길을 끈다. 시인 김수영, 야구선수 선동열, 웹툰 작가 이말년(침착맨), 축구선수 박규현 등 초상이 관객을 응시한다.

지난해 강단에서 내려와 정년퇴직한 작가는 사진, 유화 작업, 설치작품까지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더 자유로운 한국화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해나갈 예정이다.

전시는 8월17일까지.

문화스포츠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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