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보릿고개 넘는 면세점…비상경영 호텔신라, 무이자 자금조달 비결

호텔신라, 1300억대 교환사채 발행
채무 상환 및 인천공항 면세점 투자
"제로금리로 금융비용 절감"

호텔신라가 무이자로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하면서 면세 시장 회복세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실적 부진이 이어진 면세 업계는 잇따라 비상경영에 돌입하며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나선 만큼 기업가치를 끌어올릴지 주목된다.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텔신라는 최근 자사주를 담보로 1328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교환사채는 발행 기업이 보유한 주식과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채권이다.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어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와 비슷하지만, 신주발행으로 주식 수가 늘어나지 않고 자사주를 교환하는 방식이어서 자사주 매각 효과가 있다. 회계상 자본계정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부채비율을 낮춰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선택하는 자금 조달 방식이다.

호텔신라 영빈관 전경. [사진제공=호텔신라]

15% 프리미엄 붙은 교환사채…제로금리로 1300억원대 조달

호텔신라가 발행한 교환사채 표면이자율은 0.0%이다. 별도의 이자지급기일은 없으며 만기일은 2029년 7월 5일이다. 교환대상은 호텔신라 보통주 213만5000주로, 1주당 교환가액은 가중산술평균주가에서 15% 할증한 6만2200원이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제로(0)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한 것"이라며 "금융비용 절감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결정"이라고 했다.

호텔신라는 면세사업 부진이 이어지면서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12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 감소했다. 순손실도 16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특히 면세 사업을 운영하는 TR 부문은 영업이익이 45억원으로 전년 동기(232억원) 대비 80.6% 급감했다. 앞서 호텔신라는 지난해 4분기에도 영업손실 183억원, 순손실 363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수익성 하락은 재무 부담으로 이어졌다. 호텔신라 부채비율은 지난해 394.1%에서 올해 1분기 426.8%로 올랐으며, 차입금 의존도도 59.6%까지 확대됐다.

호텔신라는 이번 교환사채 발행으로 확보한 자금을 지난해 7월 국민은행으로부터 빌린 1500억원 중 일부를 갚는 한편, 인천공항 면세점 투자에 쓴다는 계획이다. 차입금을 상환해 이자비용을 줄이고, 공항 면세점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신라면세점은 지난해 인천공항 출국장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돼 대대적인 개보수를 진행해왔다.

코로나19 직격탄 면세점…비상경영 잇따라

국내 면세 업계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해외여행이 전면 중단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엔데믹 전환 이후에도 업황 회복세는 더딘 편이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 전체 매출액은 2019년 24조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이 가운데 외국인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20조에 달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15조원으로 급감한 뒤, 이듬해부터 소폭 증가했지만 지난해 13조원대로 주저앉았다. 올해도 회복 추이가 더딘데, 지난 5월까지 매출액은 6조원을 소폭 넘겼다. 지난해부터 환율까지 치솟으면서 면세점을 찾는 여행객이 줄어든 탓이다.

이 때문에 면세업계에서는 잇따라 비상경영에 나서고 있다. 앞서 롯데면세점은 지난달 희망퇴직, 임원 급여 20% 삭감 등을 골자로 하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롯데면세점은 전사적 인력 구조조정 외에도 서울 잠실 월드타워점의 35%를 차지하는 타워동 매장을 없애는 등 조직 슬림화를 감행 중이다.

호텔신라는 희망퇴직 등 인력 감축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지난 1분기 때 전 분기 대비 흑자 전환이 되면서 내부적으로 '해보자'란 분위기가 형성된 상태"라며 "희망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보다는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면세점 바닥 찍었나…투자업계, 호텔신라 기업가치 상승 베팅

일각에서는 호텔신라가 현재 기업가치보다 웃돈을 얹은 교환사채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무이자로 자금을 조달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호텔신라 교환사채는 모두 국내 증권사들이 인수했다. 채권의 경우 통상 원금과 함께 이자 수익을 기대하고 투자하는데, 이번 교환사채는 무이자인 데다, 현재 주식가치보다 미래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았다. 인수자들이 향후 호텔신라 주가가 상승할 것을 기대하고 투자에 나섰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호텔신라는 이번 교환사채를 발행하면서 2027년 7월5일부터 회사 종가가 10거래일 연속 교환가액(6만2200원)의 110%(6만8420원)를 초과할 경우 중도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콜옵션 조항을 담았다. 또 발행일로부터 2년이 되는 2026년 7월 5일 이후 3개월마다 인수자가 조기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풋옵션 조항도 마련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호텔신라의 경우 기업이 탄탄하기 때문에 채권 투자라기 보다 자산에 대한 투자"라며 "교환사채는 최소한 원금은 보장되는 데다, 향후 주가가 상승할 경우 추가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 경기 부진이 계속되면서 핵심 고객층인 단체관광이 아직 재개되지 않은 만큼 단기간 면세점의 실적 반등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중국 단체관광객이 들어와야 실적 개선이 이뤄지는데 올해 들어서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면세 기업 대부분이 비상경영에 들어갈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유통경제부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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