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신동빈, '도전자' 신유열…같은 듯 다른 父子의 길

아버지와 비슷한 길 걸으며 주목
업종·주변환경은 판이하게 달라
본인만의 '성공 방정식' 쓸지 관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 미래성장실장(전무)이 일본 롯데홀딩스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신 전무가 한국과 일본 롯데 지주사의 임원직을 모두 맡게 되면서 ‘롯데 3세’ 신 전무의 시대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신 전무가 아버지 신 회장이 밟아온 길을 그대로 따라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다만 부자 사이의 교집합이 많을 뿐, 추진하고 있는 업종과 주변 환경은 판이하게 달라 신 전무가 본인만의 '성공 방정식'을 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유열, 한일 롯데지주사 모두 임원직에 올라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26일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 전무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앞서 신 회장의 형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신 전무의 사내이사 선임에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반대 의결권 행사에 나섰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신 전 부회장의 반대에도 신 전무는 롯데홀딩스 사내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의 지주사로 한일 양국에 걸친 롯데그룹의 핵심이다. 한국과 일본 롯데지주사에서 모두 임원직에 모두 오르면서 신 전무의 그룹 내 존재감도 커지게 됐다.

신 전무가 롯데홀딩스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린 것은 향후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그간 경영 수업을 받아왔던 신 전무가 한국에 이어 일본 롯데에서도 경영 일선 전면에 나서게 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아버지와 꼭 닮은 신 전무의 행보…첫 경영 '신사업'도 유사

신 전무는 아버지인 신 회장과 유사한 행보를 걷고 있다. 신 전무는 일본의 귀족학교인 아오야마 가쿠인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게이오 대학교를 졸업했다. 신 회장은 아오야마 가쿠인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졸업했다. 대학만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MBA를 수료한 것도 같다.

신동빈 롯데 회장(왼쪽)과 신유열 롯데 미래성장실장(오른쪽 두번째)이 지난해 3월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 에비뉴엘을 방문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회장과 만나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노무라 증권에서 시작했다는 것도 닮았다. 신 회장은 1981년 일본 노무라 증권에 입사했으며, 신 전무는 2008년에 들어갔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평소 강조한 "남 밑에서 고생을 해봐야 사회를 배울 수 있다"는 경영 철학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1988년 일본 롯데 상사에 사원으로 입사했으며 신 전무는 2020년 일본 롯데 영업본부장으로 들어왔다. 공교롭게 '남'인 노무라 증권에서 벗어나 롯데에 합류한 나이가 두 사람 모두 34세다.

일본 롯데에서 시작해 한일을 오가는 경영수업을 받았다는 점도 유사하다. 한국에서 시작도 신 전무는 2022년 롯데케미칼상무보로 출발했고, 신 회장도 1990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의 상무로 입사했다. 한국 롯데와의 인연을 모두 롯데케미칼에서 시작한 것이다.

한일 롯데를 모두 경험한 이후 신사업을 통해 그룹 내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신 회장은 1999년, 당시는 유통의 최신 사업인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의 대표로 취임했다. 2000년에는 롯데닷컴(현재 롯데온)의 대표이사를 맡아 국내 최초의 온라인쇼핑몰 구축을 진두지휘했다.

신 전무는 2023년 12월 인사에서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 전무로 승진했다. 미래성장실은 새로 만들어진 조직으로 바이오와 헬스케어 등 신사업을 관리과 또 다른 사업을 발굴하는 임무를 맡는다. 아버지와 같이 롯데그룹 미래 먹거리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국내 최초'지만…아들은 경쟁자 쟁쟁한 시장 진출

이처럼 유사한 길을 걸은 두 사람이지만, 향후 미래는 다른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인 신 회장은 '개척자'였지만 신 전무는 '도전자'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편의점은 1982년 롯데세븐이 서울 중구 약수시장 앞에서 1호점을 개설한 것이 시초이지만, 곧 영업을 종료했다. 현재 편의점의 시작은 1989년 올림픽기자선수촌아파트에 개설한 코리아세븐의 세븐일레븐 1호점이다. 온라인쇼핑몰도 1996년 시작한 롯데닷컴이 국내 최초다. 신 회장의 신사업은 국내에 없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했다.

반면 신 전무가 맡은 바이오와 헬스케어 부분은 이미 쟁쟁한 경쟁자들이 즐비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 셀트리온 등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경쟁사 사이에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이제 만 2년의 업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헬스케어도 삼성과 카카오 등 강자들이 버티고 있다.

롯데는 승계문제보다도 현재 미래먹거리 찾기가 절실한 상황이다. 롯데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정 자산 기준 6위에 머물렀다. 주력 사업인 유통, 화학 등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순위 5위인 와 격차가 벌어지면서 '재계 5위' 재진입에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신 전무, 경영 능력 입증이 숙제…입증되면 승계는 자연히 이어질 전망

이같은 상황에서 신 전무는 바이오·헬스 분야에서의 경영 능력 입증이 숙제다. 바이오는 롯데가 신성장동력으로 꼽는 핵심으로 2030년까지 글로벌 톱10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세운 바 있다.

롯데는 2030년까지 3조원을 투자해 국내 메가 플랜트 3개 공장을 포함한 ‘롯데 바이오 캠퍼스’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공장당 12만ℓ 규모의 항체의약품을 생산하고, 임상 물질 생산을 위한 소규모 배양기 및 완제의약품 시설을 추가한다.

이같은 계획에 따라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다음 달 3일 송도 바이오 플랜트(거대 생산공장) 착공식을 열고 본격 공사에 들어간다. 이를 위해 신 전무가 미래전략실장으로 있는 롯데지주는 24일 롯데바이오로직스에 1200억원을 출자한다고 공시하는 등 그룹의 역량을 집중 시키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신 전무가 새로운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 전무가 맡은 사업은 승계도 중요하지만, 롯데의 미래가 걸려있는 분야"라며 "여기서 성과만 낼 수 있다면 승계작업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룹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통경제부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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