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윤 대통령의 복잡한 심경

연정 논란후 지지층마저 이탈
野와 대립이 낫다고 판단한 듯

1996년 미국에서 나온 책의 제목인 ‘충격과 공포’는 총선 참패를 접한 윤석열 대통령의 심경이었는지 모른다. 이제 여당 의석은 108석으로 줄어든다. 야당이 대통령 탄핵이나 임기 단축 개헌을 밀어붙일 때 이를 막을 방어막이 얇아졌다. 일부 여당 의원만 야당에 동조해도 상황이 심각해진다.

수세에 몰린 대통령은 대개 협치를 통해 야당의 공세를 누그러뜨리려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의 영수 회담,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박근혜 대통령의 친노무현계 김병준 총리 후보 지명이 그 사례다. 윤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영수 회담을 8번 요구했지만, 윤 대통령은 602일 동안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총선 9일 후 이 대표에게 만나자고 했다. 파격적으로 직접 전화했다. 불안과 위기감이 만든 변화였다. 입원 예정인 이 대표에게 안부를 묻는 등 윤 대통령의 ‘환심 소구’는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적잖이 실망했을 것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영수 회담에서 ‘아주 짧게’ 모두발언을 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정작 이 대표는 15분간 10장을 읽어내렸다. “독재화” “정치 실종” “가족 의혹 정리” 같은 비난성 워딩이었다. 윤 대통령은 표정이 굳어졌다. 이 갑작스럽고 도발적인 프로파간다를 ‘대통령 탄핵 빌드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로 느꼈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야당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지 못했다.

‘박영선 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검토설’은 윤 대통령이 느낀 불안감의 절정이자 종말 단계다. 대통령실은 검토설을 부인했지만, 이 이슈는 보수층의 반감을 샀다. ‘문재인의 측근과 함께 국정을 하겠다는 윤석열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저쪽 편인가 우리 편인가’ 하는 의문이 싹텄다.

이 윤석열식 연정 논란 후 지지층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조짐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대통령 지지율도 추가 하락했다. 이 무렵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로 인한 공포보다 더 큰 공포를 느꼈을 수 있다. 같은 진영마저 돌아서면 지지율 20~30%대 대통령을 지켜낼 방어력은 현저히 약해진다. 윤 대통령은 정신이 확 들었을 수 있다.

결국 총선 패배를 겪고 이렇게 야당과 지지층의 반응을 확인하면서 윤 대통령은 다시 심경 변화를 겪은 듯하다. 그는 예전의 불통 이미지에서 벗어나 여론의 지지를 회복하려 한다. 오랜만에 기자회견을 했고 마음껏 질문하게 했다. 기자들과 김치찌개 파티도 했다. 야당과의 소통은 이런 ‘불통 이미지 희석’의 일환 정도로 조정된다. 야당과의 협상으로 특검·탄핵 위협을 제거하는 것에 회의를 느낀 듯하다.

윤 대통령은 ‘지지층을 되잡고 야당과 선명하게 대립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바꾼 것처럼 보인다. 진영대결 양상은 소수당 대통령의 안전판이 돼왔다. 윤 대통령 지지층 상당수는 ‘전 정권 등의 권력형 의혹에 대한 수사’를 원한다. 여기엔 법치를 원하는 윤리와 응징을 원하는 욕망이 혼재돼 있다. 윤석열 정부 검찰은 그간 아무 일도 안 한 것으로 평가됐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윤 대통령은 민정수석을 되살렸고 문재인·이재명 일가 의혹 수사 검사들을 서울중앙지검장 등 요직에 배치했다. 이후 수사는 사회적 쟁점이 됐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수사한 정호성 전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관을 대통령실 비서관에 앉혔다. 이 일은 윤 대통령의 복잡한 심경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지금 그의 마음은 먼 길을 돌아 진영에 의지하고자 하는 듯하다.

허만섭 국립강릉원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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