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북미 대륙 개기일식으로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지난달 8일. 일부 월가 투자자들은 다른 현상을 관측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로 뉴욕 증시가 일식에 맞춰 반등할지 여부였다.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1990년부터 2017년까지 미 대륙엔 총 13번의 개기일식이 벌어졌고, 그중에서 10번은 주가가 상승했다고 한다.
이번 개기일식은 어땠을까. 4월 8일 당시 미국 3대 증시는 보합권에서 마감했다. 하지만 '일식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다. 그 전주의 전반적인 약세를 다소 회복한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천체 현상을 통해 주식 시장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을까. 천문학이 발달하면서 점성술은 미신, 유사 과학의 영역으로 물러난 지 오래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한 금융 공학을 이룩한 월가에서조차 여전히 '금융 점성술'을 탐구하는 극소수의 투자자들이 있다고 한다.
현대 금융업은 매우 복잡한 공학이다. 유동성(Equity) 분석 및 연구에는 최첨단 데이터 과학, 수학, 컴퓨터 공학, 심지어 인공지능(AI) 모델이 총동원된다. 유명 AI 스타트업들도 투자 회사나 헤지펀드 출신 엔지니어들이 창업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고도로 발달한 산업에 점성술 같은 미신이 끼어들 여지가 과연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금융 점성술에 대한 믿음은 제법 오랜 시간 금융업계와 공존해 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일식 랠리'의 가능성은 올해 개기 일식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이미 화제였다. 미국 현지의 지역 뉴스, 금융 관련 소식을 전하는 뉴스레터들은 과거 일식 당시 다우존스 지수의 움직임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과거엔 금융 점성술사들이 직접 월가에서 '예측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예측가'라는 한 잡지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점성술로 미국 증시 및 국채 수익률 등의 움직임을 예측했는데, 심지어 2002년에는 예측 기관 중 최고의 적중률을 보이기까지 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금융 점성술을 주식 분석 도구로 사용한다고 홍보하는 자산관리사, 애널리스트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금융 점성술은 실존하는 걸까. 답은 '아니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령 점성술로 주식 가치를 예측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높은 적중률을 보였다고 해도 말이다.
문제는 금융 시장의 움직임이 애초부터 극히 예측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일례로 1999년 미국에선 '레이븐'이라는 이름의 침팬지가 다트를 던져 고른 주식으로 '몽키 덱스(MonkeyDex)'라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는데, 그 해 약 6000명의 월가 전문 투자자를 넘어서는 실적을 보여준 적이 있다.
즉, 완전히 랜덤으로 뽑은 데이터조차 운이 좋을 때는 전문 지식을 갖춘 투자자도 능가할 수 있는 게 금융시장이라는 것이다. 장의 변동성이 너무 클 때는 예측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 점성술의 예측이 간혹 제대로 적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다만 '장의 불확실성'이라는 시장의 특성 덕분에 금융 점성술은 오늘날까지 잊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도 금융업계에는 다양한 속설, 내지는 격언이 효력을 발휘한다. 금융 시장의 흐름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믿음인 '캘린더 효과', 5월에 증시가 빠진다는 '5월에 팔아라(Sell in May)'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속설이 워낙 많다 보니 '피셔 인베스트먼트' 창업자인 켄 피셔가 직접 50가지 월가 미신을 격파한 '투자의 배신'이라는 책을 펴냈을 정도다. 금융 점성술 같은 미신도 그 효과가 입증되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일부 투자자나 고객들의 마음에는 위안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