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권해영특파원
지난달 미국 소매판매가 깜짝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미 경제가 성장세를 지속하는 '노랜딩(no landing·무착륙)' 시나리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견조한 노동시장이 소비를 뒷받침하며 고물가, 고금리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5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시장에서는 연내 금리 인하가 없을 수 있다는 예상은 물론,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내년 금리 인상 페달을 다시 밟을 것이란 전망까지 제기된다.
15일(현지시간) 미 상무부에 따르면 3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7% 증가했다. 시장 전망치(0.4%)를 크게 웃도는 속도로 소비가 늘어났다. 자동차와 휘발유를 제외한 소매판매는 1% 증가했다. 전문가 예상치(0.3%)를 역시 상회했다.
소매판매 13개 항목 중 8개 분야에서 증가세가 확인됐다. 전자상거래에서 2.7%, 주유소 부문에서 2.1% 소비가 늘었고 자동차 판매는 0.7% 줄었다.
소매판매 지표는 미국 실물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버팀목으로 종합적인 경기 흐름을 판단하는 지표로 여겨진다. 지난달 소비가 예상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뜨거운 인플레이션이 굳어질 위험이 예상된다. 이에 미 Fed가 금리 인하에 더욱 신중해질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면서 국채 금리는 급등했다. 글로벌 채권금리 벤치마크인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11bp(1bp=0.01%포인트) 오른 4.61%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5개월 만에 최고치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 국채 2년물 금리는 4bp 상승한 4.92%를 기록하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앤드루 헌터 차석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고용 증가 부활, 소비의 지속적인 회복력은 Fed의 금리 인하 착수까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 의심하는 또 다른 이유"라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미 경제의 노랜딩 전망이 확산되며 올해 금리 인하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가 계속 재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Fed는 2024년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펜하이머 자산운용의 존 스톨츠퍼스 수석투자전략가는 "우리의 견해는 Fed가 더 높은 금리를 더 오래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이 꺾일 때까지 '일시정지'를 지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리 인상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UBS 그룹 AG는 미국 경제의 강력한 성장과 끈질긴 인플레이션으로 Fed의 금리 인상에 나설 확률이 커졌다고 봤다. 기본 시나리오상으로는 2회 금리 인하를 예상하지만, 인플레이션이 Fed 목표치인 2%까지 하락하지 않으면 Fed가 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전환, 국채·주식 투매를 촉발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조너선 핑글 UBS 전략가는 "경기 확장세가 회복탄력성을 유지하고 인플레이션이 2.5% 이상에서 머무른다면 Fed가 내년 초 금리 인상을 재개할 실질적인 위험이 있을 것"이라며 "내년 중반까지 금리가 (현 5.25~5.5%에서) 6.5%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도 최근 "Fed의 다음 금리 행보는 인하가 아닌 인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금리 인상 확률을 15~25%로 제시했다. '월가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역시 금리가 8%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소비의 예상 밖 증가와 국채 금리 급등에 이날 뉴욕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65% 내렸고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1.2%, 1.79%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