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중공군에게 감사해라?…BTS 공격하는 홍위병 후예들(下)

넷플릭스 '삼체'로 들여다본 홍위병
지식인을 정신 귀족이라며 내쫓은 마오쩌둥
홍위병, 분노 청년·자간오·소분홍으로 이어져
"시진핑, 문화대혁명으로 독재 장기집권 노려"

'알고 보면' 좋을 정보를 두서없이 전달한다. 영화·시리즈를 흥미롭게 관람하는 팁이다.

*<'착한 아이들'은 왜 물리학 교수를 죽였나(上)>에 이어

*마오쩌둥은 서적 지식은 쓸모없고 책을 많이 읽으면 위험하다고 여겼다. 1964년 2월 교육 공작 좌담회에서 각급 학교의 학제, 교과과정, 교육 방법, 시험제도 등 여러 방면에 존재하는 결점을 비판했다. 그는 모든 학제를 단축하고 교과과정을 간결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부는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이 해서는 안 된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어리석다"라는 의견을 발표했다. 서적 지식의 작용과 학교 교육의 필요성을 진일보 부정했다.

*마오쩌둥은 심지어 지식인을 국민당으로 비유했다. 1964년 8월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청년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어떤 도시의 대학교, 중학교, 초등학교이든 그곳의 교수, 교사, 교원, 행정요원들은 모두 국민당 사람들이다. 우리 교원은 매우 적다. 그 사람들은 모두 국민당을 위해서 일하고 있으며, 모두 미친 제국주의자들이다"라고 말했다. 또 1966년 3월 정치국 확대 회의에서는 "지금 대·중·초등학교 대부분은 모두 자산계급, 소자산계급, 지주 부농계급 출신 지식인이 독점했다. 이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국민당이다"라고 했다.

*마오쩌둥은 지식 청년들의 정신을 철저히 개조시키라고 요구했다. 구체적인 방식은 그들을 농촌으로 보내 노동으로 단련시키는 것이었다. 이른바 '빈하중농 재교육'이었다.

*마오쩌둥은 1964년 2월 지식인들이 모두 정신 귀족을 자처한다며 분개했다. "연극을 하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 극작가, 문학가 등 모두를 도시에서 쫓아내 시골로 보내고 기별로 무리별로 농촌과 공장 등지에 보내야 한다 (…) 누구든 가지 않으면 밥을 주지 말라"고 했다. 이에 따라 지식인 상당수는 상산하향했다. 농촌 등으로 이송돼 노동에 종사했다. 사상 개조의 구체적 실천이었다.

*지식인을 보는 마오쩌둥의 관점과 태도는 1957년 6월 반우파 운동이 시작되면서 일변했다. 정책에 반영해 이듬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시기에 대규모로 지식인을 비판하고 숙청했다. 파괴적이고 파행적인 정책은 오랫동안 중국 사회에 큰 파장과 후유증을 남겼다.

*지식인은 당시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이는 공산당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러나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지식인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정책이 전개됐고, 이는 노동자와 농민의 지식인에 대한 경시와 차별대우로 이어졌다. 나아가 지식인들의 의욕을 빼앗아 중국의 과학문화 등 발전에 큰 타격을 안겼다.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 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중앙 주요 정책결정권자가 됐다. 그는 두뇌 노동도 노동이며, 지식인도 노동자라는 이치를 분명하게 밝혔다. 노동자와 농민에게 의지해서 사는 '정신 귀족'이라는 관점도 부정했다. 1981년 6월 11기 6중전회에서는 '건국 이래 당의 약간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를 통과시켜 더욱 분명하게 "지식인은 노동자나 농민같이 사회주의 사업의 주요 역량이며, 문화와 지식이 없으면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오쩌둥은 1976년 9월 9일 사망했다. 1978년 8월 19일 마오쩌둥의 '착한 아이들'이던 홍위병도 정식으로 해산했다.

*분노 청년은 1990년대 중반 등장해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국의 인터넷 극우 청년집단이다. 서양의 분노 청년이 자국 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변혁의 주체로 나서려 했다면, 중국의 분노 청년은 오직 중국의 적이라고 생각되는 집단에만 분노한다.

*홍위병과 비슷한 성격의 분노 청년은 중국만의 현상으로 볼 수 없다. 1990년대 탈냉전 뒤 진영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세계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사람의 이동과 이주가 원활해졌을 뿐만 아니라 자본과 상품도 진영 장벽을 넘어 자유롭게 전 세계로 이동하게 됐다. 이런 추세에서 등장한 개념이 신민족주의다. 연구자들은 세계화로 국가정체성이 약화하면서 자기방어적 기제로 등장했다고 본다. 국가정체성의 존립에 위험을 느낀 국가가 문화정체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신민족주의가 등장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형성 과정과 목적에서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와 다소 차이가 있다.

*당이 국가를 운영하는 당국 체제의 중국에서 애국주의 교육의 근본 목적은 애당(愛黨)이다. 공산당은 애국주의 교육을 통해 공산당 노선을 따르는 인민을 길러내고자 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분노 청년들은 활발하게 활동했다. 자유파 지식인들은 분노 청년의 맹목적 애국주의, 애당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했다. 2010년대 들어서 중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 강화로 분노 청년과 자유파 지식인은 소멸하고, 자간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2010년 초중반 자유파 지식인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을 장악한 자간오는 중국 정부 관리와 그 가족들이 중심이 된 친정부 인터넷 집단이다. 2016년에는 인터넷 애국청년 집단인 소분홍이 등장해 완전히 주도권을 장악했다.

*소분홍은 자간오, 분노 청년 등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분노 청년의 공격 대상은 국내외를 막론했다. 자간오는 자유파 지식인을 주로 공격했다. 반면 소분홍은 주로 외국을 공격했다. 공청단을 조직하고 프레임을 짜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 또한 자발적으로 조직된 자간오나 분노 청년과 다른 면면이라 할 수 있다. 2016년 외국에 대한 공격은 열네 차례 있었다. 여기서 36%인 다섯 차례의 대상은 한국이었다. 또 다른 이웃 나라 일본에 대한 공격은 한 차례에 불과했다.

*국내에 알려진 유명한 분노 청년 사례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서울 성화 봉송 때 발생한 중국 유학생들의 집단 폭행 사건, 사드 사태로 일어난 중국 내 롯데마트에 대한 불법 행동 등이 있다.

*중국에서 분노 청년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건 홍콩 사오스에서 1973년 제작한 영화 '분노 청년'에서였다. 사회에 불만을 토로하며 급진적 변혁을 도모하는 청년들에 관한 이야기다. 1980년대에 홍콩에서 이 말이 본토로 들어왔는데, 현재는 약칭해 '분청'이라 부른다.

*분노 청년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신좌파, 급진 좌파, 극단 민족주의로 구분된다. 신좌파와 급진 좌파가 좌파 사상을 따른다면, 극단 민족주의는 중화 민족주의를 따르는 무리다. 다만 실제로는 좌파 사상과 민족주의 사상이 혼재해 엄격히 구분하기 어렵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신좌파가 마르크스 이론을 따른다면 급진 좌파는 마오쩌둥 사상을 따른다. 신좌파 분노 청년은 주로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한 지식인층이다. 1990년 중반 등장해 2000년대까지 분노 청년에게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초기에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는 것을 비판하고 민주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개혁개방을 찬양하고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국가주의자로 변모했다. 급진 좌파 분노 청년은 하층 민중의 포퓰리즘에 기반해 부의 평균화를 주장한다. 가장 극단적이고 과격하며 수적으로도 많다. 다시 한번 문화대혁명을 일으키자고 주장한다. 극단 민족주의 분노 청년은 서양 반대 세력이 주를 이룬다. 기본적으로 중국 정부를 지지하며 중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양을 무조건 배척하고 서양에 대한 증오가 가득 차 있다는 점은 마오주의 분노 청년과 같으나 시장경제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신좌파 분노 청년과 일치한다. 신좌파나 마오주의 분노 청년이 이론적인 기초와 학식이 있다면 극단 민족주의 분노 청년은 상당수가 중등학교나 초등학교 수준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아예 교육받지 못한 사례도 여럿 있다. 2016년 등장한 소분홍은 주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며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석사 이상 학력을 가진 이들이 36%, 대학 이상 학력을 가진 이들이 37%를 차지한다.

*중국에서 분노 청년은 극단, 편협, 무지, 저속, 폭력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현지 유명 칼럼니스트 랴오바오핑은 "맹목적으로 애국하고, 광적으로 외국을 배척하고, 자신이 대단하다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고, 경솔하고 시끄럽게 구는 비이성적 무리에 대한 통칭"이라며 "병적인 민족주의자들"이라고 비판했다. "머리가 없고 종일 반미, 반일만 생각하는, 영원히 성장하지 못한 감정적인 동물"이라고 지적했다.

*홍위병과 분노 청년은 교육을 통해 특정한 사고를 교육받은 청년집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홍위병은 정치사회화 교육, 분노 청년은 애국주의 교육이다. 전자의 사상적 무기는 사회주의 이론, 후자의 그것은 애국주의다.

*두 집단은 모두 광신적 종교인의 특징을 보인다. 특히 서양 자본주의가 중국을 망치려 한다는 음모론을 깊이 믿는다. 홍위병은 문화대혁명 시기 서양 자본주의가 화평연변(서방 국가들이 비폭력적 수단과 방법으로 변화를 유도해 사회주의 국가를 와해시키는 전략)으로 중국 사회주의를 와해시키려 한다며 혁명에 박차를 가했다. 분노 청년도 서양 자본주의가 화평연변으로 중국 사회주의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주장한다. 초기 신좌파와 급진 좌파 분노 청년은 외국을 배척해 개혁개방 정책을 중지하는 동시에 쇄국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가입한 국제기구는 물론 서구와의 경제, 문화 등 교류·합작이 필요하지 않다고 역설했다. 모두 서양 자본주의를 불신하면서 두려워했다.

*홍위병과 분노 청년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교육과 훈계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린 홍위병들은 어른들을 훈계조로 가르치고, 마오쩌둥에게 용서를 빌라고 강요했다. 특히 초기 홍위병의 중심을 이루던 중학생들은 선생님을 심판 대상으로 삼았다. 분노 청년도 외국인이나 자신과 견해가 다른 내국인에게 중국을 대표해 훈계하고 징벌을 가한다. 20대 젊은이가 칠순 노인의 따귀를 때리며 훈계하는 일이 벌어졌을 정도다. 두 집단은 모두 자신들의 폭력적 행위가 죄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애국자의 영웅적 행동이라고 믿는다. 더구나 당시 지도자의 지지를 받은 관계로 어떠한 폭력적 행위도 범죄로 규정될 수 없었다. 홍위병에게는 마오쩌둥 주석의 지지가 있었다. 분노 청년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으나 공산당의 뒷받침이 있었다. 전자는 "혁명 무죄", 후자는 "애국 무죄"라고 외쳤다.

*최근에는 인터넷 애국청년 조직인 소분홍과 청년 마르크스주의 조직인 소청마가 왕성하게 활동한다. 소분홍이 처음 등장한 사이트는 진장원쉐청이다. 홈페이지 색깔이 분홍색이라서 소분홍이라 명명됐다. 진장원쉐청은 한국과 일본 유학생 모임이었다.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원래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집단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정치적 발언이 많아졌다. 진장원쉐청을 나와 웨이보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점점 인터넷 전체로 확산했다. 이들이 강력한 인터넷 집단이 될 수 있었던 건 중국 정부가 조직 형성에 긴밀히 관여했기 때문이다.

*소분홍에는 1990년대 출생한 남성 고학력자가 많다. 대부분 태어나면서부터 애국주의를 교육받았다. 분노 청년이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부터 애국주의를 교육받은 것과 차이가 있다. 소분홍은 고학력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분노 청년의 경우 대학 이상 학력자만큼 초등학교와 무학자도 많았다.

*방탄소년단이 미국 밴플리트상 시상식에서 한 발언에 중국 네티즌이 분노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원인은 중국의 왜곡된 한국전쟁 교육과 관련이 있었다. 방탄소년단은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무수한 남자와 여자의 희생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치우시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돌인 방탄소년단이 정치적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며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영원히 양국(미국과 한국)이 함께 겪은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라는 표현에 많은 중국 네티즌이 분노하고, 일부 팬은 팬클럽 탈퇴를 표명했다. 이들에게 원인을 묻자 '나는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또는 '국가 존엄과 관련된 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네티즌은 방탄소년단이 이전 인터뷰에서 타이완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했다는 내용도 폭로했다."

*환치우시보 보도는 사실을 전달하는 형식을 띠었으나 방탄소년단의 수상 소감을 '정치적 발언'이라고 단정했다. 양국을 미국과 한국이라고 설명했으며, 방탄소년단을 타이완 독립분자로 규정했다. 중국 언론 보도를 접한 한국 네티즌은 도대체 어떤 부분이 중국의 국가 존엄을 훼손했는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이유는 중국 네티즌이 웨이보에 남긴 생각에서 포착됐다. "방탄소년단이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많은 중국 참전군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참전군인에 감사를 표현하지 않았다' 등의 발언이다. 한국인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중국군은 적군으로 한국인을 죽였기 때문이다. 중국 군인을 위해 애도하고, 심지어 감사까지 하라는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소분홍은 애국주의 정신이 이끄는 대로 국가의 주권과 영토, 국가통일과 단결을 마음속 신앙으로 삼고 있다. 중국의 실상에 대해 비판하는 외부 집단과 투쟁하는 청소년 인터넷 애국단체라 할 수 있다.

*소분홍이 한국을 자주 공격하는 건 한국 문화에 그만큼 익숙해서일 수 있다. 다른 나라 인터넷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출정은 2008년 11월 동방신기 홈페이지가 처음이었다. 2010년 6월 9일에는 슈퍼주니어 홈페이지를 공격했다. 이를 '69 성전'이라 부른다.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이라는 매력적인 지도자, 부의 평균화라는 포퓰리즘, 세계 사회주의 국가를 이끌겠다는 중화 민족주의, 마오쩌둥 사상의 세뇌 교육, 영웅 의식으로 가득 찬 홍위병이라는 요소가 결합해 일어났다.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부의 평균화는 중국 모델, 세계 사회주의를 이끌겠다는 주장은 중국몽이라 할 수 있다. 애국주의 교육을 통해 양성된 분노 청년도 홍위병을 대신할 준비가 돼 있다. 시진핑 주석도 마오쩌둥을 대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성숙한 국가' 저자 쉬즈위안은 "중국 정권의 본질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며, 단지 일시적으로 힘의 부족 때문에, 비교적 온화한 표정을 내비쳤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감을 얻게 된 순간 즉시 본래 가지고 있던 억압의 본질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자신감을 얻은 시 주석은 제2의 문화대혁명을 통해 독재 장기 집권을 꿈꾸고 있다.

참고 자료 : 김인희 지음·발행처 푸른역사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 청년(2021)', 빌 헤이턴 지음·조율리 번역·발행처 다산초당 '중국이 말하지 않는 중국(2023)', 김재선 지음·발행처 한국학술정보 '모택동과 문화대혁명', 김범송 지음·발행처 역락 '모택동과 중국혁명 1(2024)', 필립 쇼트 지음·양현수 번역·발행처 교양인 '마오쩌둥 2: 문화혁명의 붉은 황제 1937~1976(2019)' 등.

문화스포츠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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