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형기자
일본은행(BOJ)의 기준금리 인상에 끝날 줄 알았던 엔저(低)가 지속되며 엔화 강세에 베팅한 투자자들의 한숨이 짙어지고 있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단기적으로 엔화 약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엔화 강세를 전망했다. 향후 엔고 환경에서는 한·일 양국 간 수출 업종의 경쟁 구도를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엔화는 달러당 151.34엔에 거래를 마쳤다. 141.55엔을 기록한 연초 대비 7% 이상 올랐다. 원·엔 환율도 100엔당 800원대 후반에 머물러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19일 금융정책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8년여에 걸친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했으나 여전히 엔화는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역사적 저점을 기록 중인 엔화 가치에 엔화 예금은 급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국내 거주자의 엔화 예금 잔액은 전월 대비 4.6% 증가한 98억6000만 달러(약 13조3000억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60.8% 증가한 규모다.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60억달러 내외에서 등락했으나 7월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다. 엔화 예금이 100억달러에 가까워진 것은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2년 6월 이후 처음이다.
일본의 통화 정책 변화가 엔화 강세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관련 금융 상품의 인기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BSTAR 미국채30년 엔화노출(합성H) 상장지수펀드(ETF)는 지난해 12월 상장 이후 단 하루를 제외하고 개인 순매수가 지속되며 1일 기준 순자산 2019억원 규모로 커졌다. 올해 하반기 미국의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면 미국채 30년물 투자에 따른 자본 차익을 누림과 동시에 엔화 가치 변동에 따른 환차익까지 노리는 매수세가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종료 이후에도 엔화 강세는 곧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 등 일부 완화적인 기조를 유지해 엔화 가치 절하 압력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내수와 물가, 실질임금 등을 고려할 때 올해 2분기 중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황"이라며 "수출 경쟁력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 등 어느 정도의 엔저를 용인할 유인도 존재하기에 150엔 부근에서 상단만 제어하려는 소극적인 대응이 예상된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장기적인 엔화 가치의 방향성은 강세가 맞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가 구체화하는 2분기 이후 엔화는 점진적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권가는 기다림 끝에 다가올 엔화 강세 환경에서는 일본과 경쟁 관계에 있는 수출입 업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우지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제3국 시장에서 한·일 양국 간 수출 경합도가 높아 엔고 현상으로 인한 수출 경쟁력이 부각되는 전자기기, 가전,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업종과 은행, 통신주 등 경기방어주 업종 중심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원·엔 환율 상승 폭과 코스피 수익률, 그리고 원·엔 환율 월간 수익률과 외국인의 20일 누적 순매수 규모가 모두 역의 상관관계"라며 "엔화 강세에 따른 국내 증시에 대한 긍정적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국 제품의 경쟁력 개선으로 여타 국가 대비 비교 우위가 높아지면서 이전에 비해 수출 경합 수준을 평가하는 의미가 다소 퇴색된 감은 있다"면서도 "한국과 일본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유사한 만큼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수출 경합을 벌이는 구조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장기적으로 엔화 강세 진행 시 일본과 수출 경합이 큰 업종 중 수출 점유율이 감소했던 업종에 주목해 볼 수 있다"며 "석유, 가전, 자동차, 선박 등의 업종은 일본 경쟁 업체들에 비해 수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가면서 전 세계 시장 점유율 회복에 나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