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기자
네이버, 쿠팡, 카카오 등 인터넷 업계가 안경과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달라고 여야에 정식 요구했다. 안경과 렌즈 판매는 현재 오프라인 안경점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규제를 풀어 온라인에서도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법률과 세금서비스, 차량 공유 등 영역에서 신구 사업자 간 갈등이 표출된 상황에서 안경 유통업과 온라인 업체 간 쟁점이 가세하는 계기가 되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7개 협단체로 구성된 디지털경제연합은 최근 발간한 ‘22대 총선 정책제안서’에서 안경 유통 관련 규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2021년 출범한 이 단체가 처음 내놓은 총선 정책제안서에서 안경 유통 규제 해소를 주요 의제로 꺼내든 것이다. 제안서에는 안경 외에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 제언 60여 개가 담겨 있다. 디지털경제연합에 포함된 회원기업 수를 모두 합하면 2만2000여곳에 달한다.
인터넷 업계가 안경 유통에 주목한 건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에선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한 안경사가 있는 오프라인 안경점에서만 살 수 있다.
안경·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를 금지한 규정은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법 12조에는 ▲안경사가 아니면 안경·콘택트렌즈를 판매할 수 없고 ▲안경·콘택트렌즈는 오프라인 안경업소에서만 판매해야 하며 ▲안경사는 콘택트렌즈를 팔 때 사용법과 부작용 등을 전달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하지만 안경점이 없는 도서·산간 지역에선 돋보기안경을 하나 사려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실정이다. 소비자는 또 온라인에서 가격을 알 방법조차 없다. 미국의 아마존은 물론이고 일본의 라쿠텐, 중국의 티몰 등이 이미 온라인상에서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팔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안경·콘택트렌즈 온라인 판매 허용 논란은 수년 동안 계속돼왔다. 2021년 정부는 신사업 도입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와 갈등을 빚고 있는 분야에 대해 합의안을 도출하는 ‘한걸음 모델’을 적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지난달 ICT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는 ‘안경원 콘택트렌즈 재판매 중개 플랫폼’을 실증특례로 지정했다. 승인을 받은 기업(픽셀로) 한곳만이 시범사업을 하는 방식으로, ▲구매 이력이 있는 소비자가 ▲동일한 도수의 안경원에서 재구매할 경우 ▲특정 플랫폼을 통해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다.
다만 안경의 온라인 판매에 대해선 특별한 이유 없이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2020년 7월 정부는 연구용역을 거쳐 의료기사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개정안에는 '도수 물안경'과 '저도수 돋보기안경'의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21대 국회가 끝나가는 현재까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선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는 법안에 대해 "안경 구매 방법을 확대하고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눈 건강에 위험이 없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도수 물안경과 일부 돋보기안경의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달라"는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한안경사협회는 "국민의 눈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발상"이라면서 "해외 저가 제품의 무분별한 유통이 나타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해외에선 이미 ‘안경값은 왜 비쌀까?’ 이 물음 하나로 창업을 해 대박을 터트린 기업이 있다. 2010년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동기 4명이 설립한 ‘와비파커’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와비파커는 소비자가 안경 처방전을 올리고 안경테를 5개 고르면 무료로 집까지 배송해주는 온라인 판매를 했다. 안경 유통 구조를 바꿔 기존 가격의 5분의 1수준으로 낮췄다.
한국 스타트업은 이런 아이디어가 있어도 규제 때문에 창업을 못 한다. 기업들은 착용자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돋보기안경, 미용용 콘택트렌즈라도 우선적으로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달라는 입장이다. 하명진 온라인쇼핑협회 정책지원실장은 "국민 편익을 증대할 뿐만 아니라 온·오프라인 경쟁을 촉진해 상품 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