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선기자
박옥분(67) 을지다방 사장이 음료를 제조하고 있다. 사진=김진선 기자
박옥분(67) 을지다방 사장은 40년째 첫차를 타고 을지로로 출근한다. 서울 중구 세운지구 3-2구역 재개발 이슈로 을지면옥 건물이 허물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닫은 약 2개월을 제외하면 그렇다. 일요일에는 조금 늦게 문을 열지만 쉰 날은 없다. 건너편(을지로 10번 출구에서 직진)으로 이전한 지 3년차. 처음에는 낯설었다. 한 곳에서 38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맘고생도 심했다. 상권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당시 심정은 말로 다 못 한다. 38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기에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재개발 때문에 청계천 상권이 얼마나 후퇴했나. 청계천에 나오면 자재를 다 살 수 있었는데 이젠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나. 상권을 지키던 분들이 다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겠다. 옛날 그 청계천은 사라진 것이다. 미래를 위한답시고 건물을 깎고 허물고…. 보존됐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
2022년 3월 세운지구 3-2구역은 서울 청계천·을지로 일대를 정비하는 세운 재정비 사업 때문에 근현대건축자산으로 지정된 여러 가게가 문 닫았다. 을지다방과 을지면옥 등 40년 가까이 함께 한 터줏대감이 손님 곁을 떠난 것이다. 당시 서울시가 인정한 '생활 유산'이자 노포(오래된 가게)이기에 중구에서 없어지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컸다. 종로, 마포 등 타지역에서는 러브콜을 보냈다. 그럼에도 을지로에 남기로 한 것은 정(情) 때문이다. 박 사장은 을지로에 대해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고 했다.
1985년 을지면옥 2층에 문을 연 을지다방. 박 사장은 인근 상권 가게 사장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위아래 층에서 38년 동안 살을 부대낀 을지면옥 사장과도 각별하다. 재개발 이슈로 을지로를 떠난 을지면옥은 4월 께 낙원동서 새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 문을 열었지만, 연락은 자주 한다. 박사장은 "가까우면 좋은데 아쉽다는 얘기를 자주했다. 좀 쉬었다가 가까운 곳에서 같이 하자는 말도 했다"라고 했다.
을지다방 이전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갑자기 자리를 빼 이전할 곳이 마땅치 않아 가게 물건을 둘 곳이 없었다. 인근 쎈츄럴관광호텔 대표가 자리를 내줬다. "1층에 자리가 비어있다고 짐을 두라고 연락이 왔다. 인테리어 마치고 짐을 옮겨 온 것이다. 이웃 도움의 손길 없이는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라고 말했다.
"인근 상권 사장들과는 가족보다 더 끈끈하다. 공생공락(共生共樂)이다. 처음부터 고생과 즐거움을 같이 나눴다. 가게 마무리하고 술 한잔씩도 하고 정말 재밌었다. 요즘에는 그렇지 못하지 않나. 코로나가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누가 상상이나 했나."
을지다방(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에 BTS 사진이 붙어있다. 사진=김진선 기자
외국 손님들이 직접 남긴 방명록. 가게 내부와 BTS 멤버 등 다양하다. 사진=김진선 기자
을지다방 곳곳에는 BTS 멤버들 사진과 사인이 붙어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BTS 성지라고 불린다. 외국 팬들에게 공유하라고 한국 팬들이 전한 멤버들의 사진이 서랍에 가득하다. 방명록을 보면 외국 팬들이 번역기를 돌려가며 쓴 글씨가 눈에 띈다. 가게 내부 그림부터 사장 초상화까지 다양하다. 박 사장은 고마운 마음이 크다면서 제일 중요한 건 '손님'이라고 강조했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촬영은 안 하려고 한다. 멀리에서 온 손님들이 촬영이나 대관 때문에 헛걸음을 하게 될까 봐 맘이 쓰인다. 손님들을 서운하게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가게 내부 물건에 대한 애정도 있다.
"가게 안에 새로 살 수 없는 물건들이 많다. 오래된 물건이라고 새로 사라는 분들도 있는데 우리네 사람들은 쓸만한 것은 못 버리지 않나. 오래된 느낌 내려고 소품 쓴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는데 다 내가 사용하던 것들이다."
40년 동안 한 가게를 지킨다는 것은 한국에선 어려운 일이다. 박 사장은 "있는 그대로 하자는게 소신이다. 내 성격 그대로 (억지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가게도 있는 그대로"라고 말했다.
을지다방 내부 모습. 사진=김진선 기자
"동창 모임도 많이 하고, 해외로 이민 간 분들도 온다. 사장이 바뀌지 않고 가게가 그대로 있다고 반가운 마음을 드러낸다. 재개발 때 그런 손님들 생각에 가장 마음이 아팠다. 일부러 멀리서 찾아왔는데 추억의 장소가 없으면 얼마나 속상하겠나. 30년 전 캐나다로 이민 가서 매년 한 번씩 오는 할머니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밖에도 어머니 모시고 오는 분들, 어릴 때 왔는데 군대가는 분 등 많다."
쌍화차, 냉커피, 오미자차 등 음료와 11시 전에 가면 라면도 맛볼 수 있는 것이 을지다방의 매력. 박 사장은 인근 일하는 분들이 배고플까 봐 라면을 팔기 시작했다. 김치도 직접 담근다. 오미자차에 들어가는 오미자 가루, 매실차에 들어가는 매실액도 직접 만든다. 가게 곳곳에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다. 프렌차이즈 카페가 즐비한 을지로에 을지다방만이 지닌 내공이자 힘이다.
"멀리서 찾아온 손님, 오래 와주는 손님 등 많은데 밖에서 사온 걸 내놓기 미안하다. 손님들이 을지다방에 오면 추억을 되살리고, 집안에 들어온 것처럼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