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라덕연은 왜 8쪽 옥중편지를 보냈나[주가조작과의 전쟁]

①-⑶민사 재판부에 8쪽 분량 옥중 편지
"1개 종목 하락했다고 전체 주식 반대매매"
키움 "라덕연, 본인 책임 줄이고자 왜곡주장"

"존경하는 재판장님. 본 건은 SG증권발 주가 폭락사태가 아닌 키움증권발 주가폭락 사태입니다. 이에 대해 설명해 드리기 위해 CFD 계좌의 주문 구조와 반대매매 요건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돼 구속기소된 라덕연 호안투자자문 대표가 자신이 낸 민사 소송의 재판부에 자필 편지를 보내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판사에게 '차액결제거래(CFD) 거래구조'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를 설명하고, 주가폭락의 책임을 키움증권과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에게 돌렸다.

라덕연 "1번 아파트 시세 떨어졌다고 전체 아파트 경매 넘긴 상황"

19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라 대표는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재판장 최욱진)에 8쪽 분량의 자필 편지를 제출해 "이 판결이 수십년간 대주주들에 의해 왜곡됐던 대한민국 주식 시장이 제대로 평가받는 초석이자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라 대표는 지난해 5월 구속된 뒤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같은 해 7월 김 전 회장과 키움증권,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 서울도시가스 등을 상대로 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김 전 회장 등이 상속세를 줄이려고 주가 하락 목적의 공매도를 했으며, CFD 반대매매(융자 상환을 위한 강제 매각)가 발생해 주가가 폭락했다는 취지였다.

이번 편지는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민사 재판 첫 기일이 열리기 닷새 전 작성됐다. 라 대표는 편지에서 "절대 한 종목이 하락한다고 해서 해당 계좌의 전체 주식을 반대매매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키움증권 CFD 계좌의 약관을 확인한 결과 어디서도 그런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며 "예를 들어 A 은행에서 아파트 5채를 대출받아 구매했는데, 1번 아파트의 시세가 일시적으로 하락했다고 해서 1~5번 아파트 전체를 하루 만에 경매를 넘겨버린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다우데이타는 1년 영업이익이 1조가 넘는 회사이고, 블록딜로 주식을 넘긴 가격의 시가총액은 1조5000억원에 불과했다"며 "폭락 이후 김익래 회장은 '자녀들의 주식 증여세를 내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지만, 해당 기업의 배당만 늘려도 주식을 매도한 것 이상의 금액을 자녀들과 본인이 수령하고 주식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실로 어이없는 궤변"이라고 적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도 꺼내 들었다. 라 대표는 "정부가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대주주 상속세를 얘기하고 있다"며 "키움증권 측의 주가 관리가 주가가 못 올라가게끔 억누른 것이라면, 대한민국 1400만 개인 투자자와 수사기관, 사법기관을 기만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키음증권 "주가폭락 사태 전적으로 '라덕연 일당' 탓"

키움증권은 "라덕연 측이 현재 진행 중인 민·형사 소송에서 자신의 책임을 줄이고자 왜곡된 주장을 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아시아경제의 관련 질의에 "주가폭락 사태 책임은 '라덕연 일당'에 있다"며 "라 대표 등이 인위적으로 주가를 부양한 종목들은 유동성 물량이 적어 주가 하락 시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다우데이타의 주가 하락이 사건의 단초가 됐다는 식의 라 대표 주장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사건 당일 주가가 하락한 종목은 다우데이타만이 아니라 세방, 서울가스, 삼천리 등 총 8개 종목이고, 이는 라덕연 등이 시세조종의 대상으로 삼은 종목들로 라덕연 등의 시세조종 행위 등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 및 법원 재판이 계속 중"이라고 짚었다.

서울 여의도 키움증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키움증권 CFD 계좌에서 임의로 반대매매가 실행돼 다우데이타 주가가 급락했다'는 라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도 "장 초반(약 9시20분경까지) 다우데이타 등의 주가가 급락할 당시 당사 CFD 계좌에서 반대매매 물량이 출회된 바가 없다"며 "이는 SG증권 담당자 또한 수사기관의 조사 당시 명확히 확인한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한 종목이 하락한다고 해당 계좌 전체 주식이 반대매매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라덕연 측 주장은 장중 반대매매 제도의 내용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고,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김 전 회장과 키움증권은 지난해 5월 라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바 있다.

수사·재판 어디까지 왔나… 라덕연 1심, 9월 마무리 전망

관련 수사와 재판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7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하동우)는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약 3년간 무등록 투자일임업,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조직의 자문 등 역할을 한 41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미 기소돼 1심 재판을 받는 라 대표 등 15명을 포함하면, 이 사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인원은 총 56명이다.

지난해 6월 시작된 라 대표의 1심 형사 재판은 주요 사건 관계자에 대한 증인 신문 절차가 한창이다. 자본시장법 위반(시세조종, 무등록 투자일임업),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라 대표는 "시세조종 의사가 없었고 시세조종을 하지도 않았다"며 혐의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정도성) 심리로 열린 라 대표 등의 16차 공판기일에서 재판장은 "(검찰 측 증인인) 김모씨 등을 증인 신문하고, 금융감독원 직원과 조세 전문가, 투자자, 직원 등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진행하면 오는 9월 정도에 마무리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라 대표 등의 구속 만기가 오는 5월25일이다. 그 전에 라 대표에 대한 증인 신문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추가기소된 사건들과 이 사건을 어떻게 관계설정하고 병합할지, 증인 신문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난감하다"며 "(지금) 피고인 15명으로도 대법정이 가득 찬 상황이다. 병합은 해야 할 것 같은데, 묘안이 안 떠오르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사건의 제보자로 알려진 동업자 김씨도 증인 신문에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장은 "특이한 것은 김씨가 라 대표에게 매우 큰 도움을 준 동업자 관계인데, 추가 기소사건에서도 기소가 안 됐다"며 "김씨를 기소할 예정인가, 판단도 안 됐느냐"고 물었다. 검사는 "공범들이 있어서 김씨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답했고, 라 대표 측은 "검찰 측 증인인 만큼, 김씨를 법정에 대동할 것으로 예상했다. 라 대표도 김씨를 고소했는데, 관련 수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600억원대 사회 환원 계획을 밝힌 이후 사회 환원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앞서 주가 폭락 사태 이후 김 전 회장은 계속된 소명에도 논란이 계속되자 다우데이타 주식 매각 대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키움증권 측은 "재단설립은 감독원이나 수사과정에 대한 결과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진행한다"고 전했다.

편집자주주가조작 관련 범죄 중 역대 가장 큰 규모(부당이득 합계 7305억원)의 '라덕연 게이트'가 발생한 지 1년(2023년 4월24일)이 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피해자들의 악몽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자본 시장에 실효성 있는 피해자 방안은 없습니다. 소송밖에는 답이 없으나 비용 부담과 피해입증 어려움으로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라덕연 게이트'로 형사처벌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실효성 높은 금전적 제재를 도입한 자본시장법 개정은 의미가 크지만 다양한 형태로 지속해서 증가하는 증권 범죄를 근절하려면 이를 효율적으로 적발·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속·엄정한 제재를 위한 추가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아시아경제 증권자본시장부 특별취재팀은 해외 자본시장 선진국의 제도를 살펴보고, 증권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 시장의 과제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해봅니다. 또한 지능적·조직적인 범죄행위가 발생하는 만큼 투자자의 피해구제를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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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개정보 이용, 부정거래, 시세조종, 보고의무 위반 등 각종 불공정 거래와 관련해 다양한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할 예정입니다. 자본 시장 범죄 근절을 위한 종합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보(lsa@asiae.co.kr)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특별취재팀> ▲팀장 이선애 부장 △김민영 황윤주 차민영 김대현 기자

증권자본시장부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증권자본시장부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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